국방과학연구소 | |
國防科學硏究所 | |
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 | |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방과학연구소 본부 | |
약칭 | A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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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일 | 1970년 8월 6일 |
설립 근거 | 국방과학연구소법 |
소재지 | 대전광역시 유성구 |
소장 | 이건완 |
상급기관 | 대한민국 방위사업청 |
웹사이트 | http://www.add.re.kr |
국방과학연구소(國防科學硏究所, 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 ADD)는 대한민국의 국방력 강화와 자주국방의 완수에 기여토록 국방과학연구소법에 의하여 설립된 특수법인으로 대한민국 방위사업청 산하의 기타공공기관이다.
첨단무기 체계 개발 및 국방 과학기술 조사, 분석, 연구를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신무기의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가, 생산은 방위 산업체가 담당하며, 핵무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를 이곳에서 생산, 관리한다.
본부는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으며, 경상남도 창원시에 분소가 위치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및 국방과학연구소는 정책적으로 국방과학연구소가 핵심전력체계/핵심기술개발에 중점을 두고 업체가 기피하는 고위험/비경제성 분야와 육해공군의 주력 플랫폼 무기들의 무인화/첨단화분야, 미래를 대비한 신특수무기 분야에 연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무기체계개발 및 핵심기술개발에 대한 업체주관 및 산학연주관 사업과제를 꾸준히 확대하고, 업체 및 산학연에 대한 국방과학연구소의 기술이전 및 전수 활동이 강화되고 있다.
1979년에는 미국대사와 8군사령관이 외무부와 국방부를 방문하는 등 수차례 서신 등 여러 방법으로 국방과학연구소 주도로 개발 중인 유도탄 개발 배치 계획은 동북아 평화를 파괴한다고 하였다.
1982년에는 전두환 정권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국방과학연구소의 유도탄 개발 팀을 해체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기 격추사건 이후에 드러난 한국의 군사력이 종이 호랑이 수준이라는 것에 놀라 유도탄을 다시 개발하기로 했다. 이리하여 몇몇 유도탄 개발에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시절에 계획한 작전에 중요한 첩보 수집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기술 연구개발은 부활시키지 않았다.
2522명의 인력과 8000여억 원(2008년)의 예산을 가진 대형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연구개발 인력이 82%를 차지하며, 박사 학위 소지자는 31%,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는 94%이다.
국방과학연구소는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이 국방부조직의 하나라 설립한 국방과학기술연구소를 그 전신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초기에 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서 위성개발을 위한 로케트 연구개발에 참여했던 기술자들이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국방과학기술연구소는 소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가 해체한다. 따라서 현존 국방과학연구소법에 따른 국방과학연구소와는 다른 조직으로 볼 수 있다.
위 세가지 이유로 법인화는 했지만 연구소의 역할 및 기능에 있어서는 국가 기관으로 유지하기 위해 국방부장관의 역할을 연구소 소장에게 위임할 수 있게 국방과학연구소법으로 보장하고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을 연구소에 위임하여 수행하고 있으며 국방과학기술과 관련한 제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방위 산업체는 다음과 같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