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제1동 吉音第1洞 | |
---|---|
로마자 표기 | Gireum 1(il)-dong |
행정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서울특별시 성북구 |
행정 구역 | 23통, 205반 |
법정동 | 길음동 |
관청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길음로 92 |
지리 | |
면적 | 0.74 km2 |
인문 | |
인구 | 37,549명(2017.6.30.) |
세대 | 12,941세대 |
인구 밀도 | 51,000명/km2 |
지역 부호 | |
웹사이트 | 길음1동 주민센터 |
길음제2동 吉音第2洞 | |
---|---|
로마자 표기 | Gireum 2(i)-dong |
행정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서울특별시 성북구 |
행정 구역 | 20통, 177반 |
법정동 | 길음동, 하월곡동 |
관청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양로2길 70 |
지리 | |
면적 | 0.58 km2 |
인문 | |
인구 | 12,269명(2017.6.30.) |
세대 | 5,210세대 |
인구 밀도 | 21,000명/km2 |
지역 부호 | |
웹사이트 | 길음2동 주민센터 |
길음동(吉音洞)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속한 법정동이다. 길음1동은 2002년에 서울특별시 최초로 시범 뉴타운으로 지정된 이래 가장 빠르게 사업이 진행되어 뉴타운 발표 이전부터 건설되던 아파트가 2003년에 최초로 준공되었고, 길음뉴타운 2~6구역에 이은 7~9 구역 주택 재개발사업이 마무리 되었다.
길음동은 ‘기리묵골’을 한자음으로 고쳐쓴 데서 연유되었다. 기리묵골은 의정부 방면에서 도성 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미아리고개의 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의정부 쪽에서 도성 쪽으로 넘어오는 이 고개는 경사가 완만하고 또 정릉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골짜기가 길게 형성되었다. ‘골짜기가 길게 놓여있는 동네’라는 뜻으로 ‘기리묵골’ 또는 ‘기레미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아주 맑고 고와서 물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기분이 맑아지므로 ‘좋은 노래 소리가 들리는 동네’라는 뜻으로 ‘길음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1] 특히 길음3동 지역은 송천동이란 옛 이름이 있는데 예전에는 911번지 일대가 커다란 소나무가 있고 그 아래 약수터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동부 숭신방(성외)에 속했으며, 1894년 갑오개혁 때에는 한성부 동서 숭신방(성외) 동소문외계 미아리에 속하였다. 그 뒤 일제침략으로 인하여 한성부는 경성부로 개칭되어 경기도에 예속되었으며, 1911년 경성부의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도성안은 5부 36방으로, 도성 밖은 8개 면으로 나눈, 즉 5부 8면제를 시행할 때[2], 길음동은 경성부 숭신면 미아리 불당동이었다. 1914년 경기도 내 각 면의 명칭과 구역을 새로 제정할 때, 5부 8면제가 폐지되는 대신 8면 중 일부가 경성부에서 관할하고 일부는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되었는데[3], 이때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에 속하여 변동없이 내려왔다.
1949년 동대문구에서 성북구가 분리·신설되고[4], 그와 동시에 고양군 숭인면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5], 성북구 미아리가 되었다. 1950년 3월 15일 미아리가 미아동으로 개칭되었으며, 1955년 4월 18일 행정동제 실시에 따라 미아제1~3동이 설치되었다. 1959년 10월 31일에는 미아제1동을 길음동으로, 미아제2동을 인수동으로 개칭하고, 미아제3동을 송천동과 삼양동으로 분동하였다. 1970년 5월 18일에는 길음동, 인수동, 송천동, 삼양동을 미아제1~10동으로 분동하였다.[6]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분리 신설되어 도봉구에 속하게 되었다.[7]
1975년 관할구역의 변경[8]과 도봉구 미아동 일부가 성북구로 편입되면서 미아동에서 행·법정동을 분리하여 길음동으로 정하였으며, 행정동 길음동, 인수동, 송천동을 설치하였다.[9] 1977년 9월 1일 길음동을 길음1동, 인수동을 길음2동으로, 송천동을 길음3동으로 명칭 변경하였다.[10] 2007년 12월 30일 길음2동을 길음1동에 합동하였으며, 하월곡동 일부를 길음3동에 편입하여 길음2동으로 개칭하였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