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오스카 바턴 Raymond O. Barton | |
예비역 미국 육군 소장 레이몬드 오스카 바턴 장군 | |
별명 | 애칭은 터비(Tub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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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그라나다 |
사망지 | 쿠바 아우구스타 |
복무 | 미국 육군 |
복무기간 | 1912년 ~ 1946년 |
최종계급 | 미국 육군 소장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지크프리트 선 전투 벌지 전투 서부 연합군 독일 침공 |
서훈 | 미국 은성훈장 미국 훈공장 미국 동성훈장 |
레이몬드 오스카 바턴(Raymond O. Barton, 1889년 8월 22일 ~ 1963년 2월 27일)은 미국 육군 장교이며 외교관이다.
제1차 세계 대전과 2차 대전에 참전한 그는 1946년 미국 육군 소장 예편하였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육군 제4보병사단장이었으며, 바턴은 그들의 전투 경력 임무 중 그들의 사단을 이끈 11명의 장군 중 하나였다.[1] 이후 노르망디 상륙 작전, 벌지 전투 중 주요 전투에 참여하여 그 실력을 발휘하였고, 이후 독일 전역 전투에도 참전하였다.
그는 1912년 미 웨스트포인트 육사를 졸업하고, 1917년부터 1923년까지 미국 육군 제1군단 예하 중대장을 거쳐 미국 육군 제8보병여단 예하 대대장을 역임하였다.
레이먼드는 1942년 7월 3일부터 1944년 12월 26일까지 미국 육군 제4보병사단을 노르망디 상륙 때부터 이끌었다.[2] 이후 그는 파리 해방과 휘르트겐 숲의 전투에서도 이 사단을 이끌며 활약했고, 건강 문제로 1944년 12월 27일 사단장 직에서 잠시 물러났으며 쿠바 주재 미국 대사관 수석부무관 직위를 역임하였고 그는 2차 대전 중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친구가 되었다. 이후 그는 벌지 전투 등에서도 활약을 이어갔다.
바턴은 1963년 쿠바 아우구스타에서 사망하였으며 유해가 미국에 운구되어 미국 웨스트오버 기념 공원에 안치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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