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은 창세기의 두 번째 장이다.
고대 세계에서는 신전과 우주가 긴밀한 상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신전의 건축이 우주적 용어로 묘사되었고 따라서 신전이 우주적 기능을 한다고 여겼으며, 신전이 우주의 축소판 모델로 이해되었고 우주 관련 상징 체계로 가득 차 있었다.
이와 관련해 특히 주목할 본문은 이사야 66:1인데, 이 본문은 우주 크기의 성전에 대해, 성전과 안식의 관계에 대해, 창조와 성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다.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무슨 집을 지어 바치겠다는 말이냐? 내가 머물러 쉴 곳을 어디에다 마련하겠다는 말이냐?
모두 내가 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다 나의 것이 아니냐?" 야훼의 말씀이시다. "그러나 내가 굽어보는 사람은 억눌려 그 마음이 찢어지고 나의 말을 송구스럽게 받는 사람이다. (이사야 66:1-2)
성전봉헌식의 정점은 하느님이 준비된 자신의 거처로 들어가신 후 그곳에서 안식을 취하시면서, 자신의 성전-보좌에서 우주 통치를 시작하시는 때다. 이전의 행위는 단지 이 장엄한 대단원을 준비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성한 공간의 창설과 그것에 상응하는 의례적인 기능을 핵심 요소로 하는 성전 봉헌식과 마찬가지로, 창조 이야기의 핵심에는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제자리에 놓인 주요 목적을 자세히 이야기할 뿐 아니라 제자리에 맞는 적절한 기능 주체들을 공식적으로 임명함으로써 우주가 제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음을 밝히는 내러티브가 있다. 이 내러티브에서 우주 전체는 인간을 위해 기능하도록 고안된 성전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하느님이 이 우주적 성전 안에서 안식을 취하실 때, 이는 그분의 임재에 힘입어 “(기능적) 현존으로 여겨지게 된다”(이는 고대인들의 사유에서 말하는 진정한 현존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성취하고 즐기시는 안식은 그가 질서를 세우신(창조하신) 우주를 통치하기 위해 개입할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그의 우주 통치를 용이하게 해준다.
사실상 우리는 창세기 1장을 고대 근동의 신전 건축이라는 맥락에서 읽음으로써, 히브리어 성서나 기독교 성서 전체의 정경적인 흐름이 한층 분명하게 보인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컨대 레벤슨은 히브리어 성서에 있는 다음과 같은 수미상관에 주목한다.
“히브리어 성서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하늘과 땅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창세기 1:1) 하늘의 하느님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역대기 하 36:23)라는 명령으로 끝난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24권의 책은 창조(성전)에서 출발하여 성전(창조)을 향해 나아간다.“
기능 | 기능 주체들(역할) | ||
첫째 날 | 빛, 어둠 | 넷째 날 | 해, 달, 별 |
둘째 날 | 궁창(궁창 위의 물, 궁창 아래의 물) | 다섯째 날 | 새, 어류 |
셋째 날 | 땅, 바다, 풀 등 | 여섯째 날 | 땅의 생물, 인간 |
일곱째 날 | |||
(성전에서) 안식하심 |
창세기 해석을 위한 이러한 견해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창세기 이야기가 물질 기원보다는 기능 기원에 속하며 신전 이데올로기가 창세기 우주론의 기초를 형성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 있다. 이런 결론은 지구의 나이, 창세기와 과학의 관계, 진화와 지적 설계와 관련된 성서 본문의 해석, 공적 과학 교육의 형성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는 우리 시대의 공적 논의와 논쟁에 대해 중요한 파급 효과를 낳는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