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우주 항공 방산 부문에서는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에너지 화학 부문에서는 한화솔루션, 한화토탈에너지스, 한화에너지, 한화임팩트, 금융 부문에서는 한화생명, 한화손해보험, 한화투자증권, 한화자산운용, 유통 서비스 부문에서는 한화호텔&리조트, 한화갤러리아 등을 대표 기업으로 가지고 있다.
2022년 4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 집계 기준(공기업 제외), 공정자산은 80조 원, 매출액은 61조원, 당기순이익은 3조 1백억원으로 재계순위 7위 규모이다[3].
한화그룹의 CI(Corporate Identity)는 '한화 트라이서클'(Hanwha TRIcircle)이라고 불린다. 한화 트라이서클은 세개의 타원형 원이 결합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팽창하며 상호 발전하는 형태로 한화그룹의 핵심가치인 도전, 헌신, 정도를 의미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가스터빈 엔진 및 부품, 항공기 부품, 우주발사체 엔진 등 우주항공, 유도무기체계, 탄약체계, 항법장치, 레이저, 우주발사체 관련 기술, 화력체계, 기동체계, 대공체계, 무인화체계 등 방산 장비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주)한화는 산업용 화약, 불꽃 프로모션, 마이닝 서비스, 이차전지 제조 장비, 태양광에너지 제조 장비, 협동로봇, 공장자동화(AGV · 자동창고 · 물류센터), 복합개발사업, 신재생 에너지(풍력·수소 등) 토목, 건축, 주택, 인프라, 환경, 화공 및 발전 플랜트 등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감시·정찰, 지휘통제·통신·사이버, IT시스템 통합, 인프라 운영, 클라우드 운영, 시스템 운영, IT 솔루션,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등 영역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신소재와 태양광 에너지, PO, PVC, CA, TDI, 수소탱크 등 신성장 동력을 적극 개발하며 글로벌 화학 선도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태양광발전,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 전력리테일, 에너지솔루션사업 개발등을 하고 있다. 한화토탈에너지스는 고부가 화학 제품과 에너지 제품을 생산하는 종합 케미칼 에너지 기업이다. 한화엔진은 조선 산업의 핵심 기자재인 대형 선박용 엔진 제작을 중심으로 엔진 부품의 판매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디젤엔진을 이용한 발전시설을 공급하는 종합 엔진메이커이다.
1946년 대한민국 최초의 생명보험사로 출발한 한화생명은 최고 우량 보험회사로 인정받으며 한화생명(구 대한생명)은 2010년 상장했다. 한화손해보험은 1946년 설립한 국내 최초의 손해보험사로 제일화재와의 2009년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갖춘 중대형 보험사가 되었다. 한화투자증권은 2010년 대한민국 내 푸르덴셜투자증권과 푸르덴셜자산운용을 인수했다.
금융계열사들은 '한화금융네트워크'라는 통합된 브랜드 하에 업종간 장벽 완화, 자본시장통합법 등 급변하는 금융시장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
명품백화점의 대표주자인 한화갤러리아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글로벌 패션 비즈니스와 프리미엄 시장을 주도하는 하이브리드형 유통 전문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한화리조트, 한화개발, 한화63시티 레저부문 3개 회사가 통합해 2010년 1월 공식출범한 한화호텔리조트는 대한민국 최고의 프리미엄 종합 서비스/레저 기업을 지향하며, 사이판 월드리조트 인수와 태안 골든베이 골프&리조트 개발했다.
한화그룹은 1952년 화약류의 제조를 위해 설립한 한국화약주식회사(현재의 ㈜한화)가 모태가 됐다. 해방 전 조선화약공판㈜ 직원이던 현암(玄岩) 김종희(金鍾喜) 한화그룹 선대회장은 화약에 대한 열정과 동료 직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방 이후 미군정에 귀속된 조선화약공판의 책임자로 발탁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1952년 10월 9일 한국화약주식회사를 설립해 한국 화약산업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후 현암 회장은 대한민국 최초로 다이나마이트 제조에 성공했으며, 이를 통해 국토재건과 산업기반 조성에 크게 공헌했다. 이후 기계공업과 석유화학산업 등 중화학 공업 위주의 국가 기반산업 육성에 평생을 바쳐 '기업보국'의 경영철학을 실천했다.
이처럼 '한국 화약산업의 개척자로서 한국의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앞당긴 기업인'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현암 회장은 2009년 조폐공사가 선정한 '한국의 인물 100인 시리즈 메달'의 주인공으로 선정됐으며[4]
, 2009년에는 한국경영사학회로부터 한국 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창업대상[5]
을 받았다.
1997년12월 한화종합화학과 독일 바스프사가 50대50으로 합작, 자본금 1132억 원으로 설립한 한화바스프우레탄의 지분을 바스프사에 1000억 원에 매각하고 한국바스프우레탄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독일 FAG와 합작하여 FAG한화베어링(현 셰플러코리아)을 설립하고, 한화석유화학(현 한화솔루션케미칼)과 한화종합화학(현 한화첨단소재 및 현대L&C)이 분할
1998년1월 한화기계와 일본정공(NSK)이 50대50의 합작으로 설립 운영중인 한화NSK정밀을 NSK사에 200억 원에 매각하고 한국NSK로 사명 변경
1999년 한화에너지를 현대정유(현 HD현대오일뱅크)에 매각 완료돼 마침내 1999년 4월 2일 현대가 한화에너지 발행 주식의 38.817%(950만 주)와 한화에너지프라자의 발행 주식 100%(400만 주)를 약 498억 원에 일괄 인수하고 간판을 에너지프라자(Energy Plaza)에서 오일뱅크(OILBANK)로 교체하였으며, 발전 부문 자산은 그룹이 재인수한다는 내용의 주식 양수도 본계약을 체결했다가 한국종합에너지(현 포스코에너지)와 인천정유(현 SK인천석유화학)로 분할 및 설립. 한화이글스 99년 프로야구 우승. 대림그룹(현 DL그룹)과 합작으로 여천NCC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