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2000년에 입단했다. 첫 출장 경기에서 한 타석에 나와 삼진을 당했다. 이것이 프로 데뷔이자 2000년의 마지막 경기였다.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출장해 주로 백업으로 나왔고, 2005년 시즌 후 외야수 강동우를 상대로 김창희와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됐다.
이적 후 본격적으로 1군 경기에 출전했다. 주로 좌투수 상대 대타 백업으로 활동하다가 2009년 당시 타격코치였던 나가시마의 조언을 받은 후 맹타를 휘날리며 선발로 자리잡았다.[1]김상현처럼 슬로우 스타터로 화제를 모았으며 규정 타석을 채웠다. 2009년 9월 25일 시즌 최종전에서 20-20 클럽에 가입했다.[2]
2009년 시즌 후 박진만의 뒤를 이어 주장으로 내정됐으나[3] 부진으로 이듬해 진갑용에게 주장을 넘겼다. 2011년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브라이언 고든을 상대로 홈런을 쳐 냈다.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며 팀의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5차전 MVP에 선정됐다.
1996년 잠실구장에서 강봉규를 응원하는 두 남자 팬이 피켓을 들고 강봉규를 외쳤다. 몸을 풀던 강봉규는 동료 선수들이 알려줘 그 팬들을 봤고, 자신에게 피켓까지 든 팬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것을 계기로 강봉규 공식 퍈클럽이 생겼고, 홈페이지까지 개설이 됐다.
당시 팬들은 두산베어스의 골수 팬이었고, '곰대'에서 맹활약하던 글쟁이들이었다. 아싸, 곱창구이, 나짱, 허클베리를 주축으로 한 괴짜들이었다. 그들은 강봉규를 불러내 술도 마시고(강봉규 선수는 안 마심) 같이 영화도 봤다. 야탑 CGV에서 매트릭스를 본 것으로 밝혀졌다.
2003년 팬클럽 회장 허클베리의 딸 돌잔치에 와 배트 선물을 하고 간 일화는 두산 골수팬들의 부러움을 샀던 사건이었다. 당시 애인하고 같이 왔는데, 미인이었다는 후문과 강봉규 선수의 친절함이 입소문을 타, 인성은 KBO선수들 중 최고라는 소문도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