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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표기 | 北有馬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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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표기 | きたありまちょう | ||||
폐지일 | 2006년 3월 31일 | ||||
이후 자치체 | 미나미시마바라시 | ||||
폐지 당시의 정보 | |||||
나라 | 일본 | ||||
지방 | 규슈 지방 | ||||
도도부현 | 나가사키현 | ||||
군 | 미나미타카키군 | ||||
분류코드 | 42372-6 | ||||
면적 | 26.13 km2 | ||||
인구 | 4,149명 (국제조사, 2005년) |
기타아리마정(北有馬町)은 나가사키현 시마바라반도에 있던 정으로 미나미타카키군에 속했다.
2006년 3월 31일, 주변 7정과 대등합병해, 미나미타카키군은 미나미시마바라시가 되었다.
시마바라 반도의 남부에 위치한다. 해안선은 짧지만 남쪽 해안을 시마바라만에 접하고 있다.
전국시대부터 에도시대 초기에 걸쳐 마을 이름의 유래이기도 한 아리마 가문의 통치가 이루어졌다. 기독교 대영주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가 통치하던 1580년(덴쇼 8년)에 현재의 마을 지역에 세미나리요(神学校)가 개설되어 일본 최초의 서양 문화 교육기관으로 이토 만쇼(伊東萬祥), 나카우라 줄리안(中浦ジュリアン), 페트로키부(ペトロ岐部) 등 많은 기독교인을 배출했으며, 에도막부의 금교령으로 폐쇄된 1614년(게이쇼 19년)까지 존속하였다.
1637년(간에이 14년)에 일어난 시마바라의 난의 전사와 난 후의 처형으로 주민들은 대부분 사망했고, 현재의 마을 주민들은 이후 다카리키 다다보의 부흥 정책으로 각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시마바라의 난 이전까지는 아리마무라 1촌이었으나, 난 이후 미나미아리마촌, 기타아리마촌의 2촌으로 나뉘었다. 이후 다른 마을과 합병하지 않고 유지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