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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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2년 4월 16일[1]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마산면 관포리 |
사망 | 1998년 6월 18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강남성모병원 | (76세)
직업 | 가수, 연극배우, 뮤지컬 배우 영화배우, 영화감독, 영화 기획가 영화제작자 |
활동 기간 | 1944~1998년 |
종교 | 천주교(영세명 : 마르티노) |
학력 | 서천보통학교 수료 신흥보통학교 졸업 대전고등보통학교 졸업 일본 오이타현 오이타 우사 농업전문학교 중퇴 일본 도쿄 우에노 음악학교 중퇴 |
부모 | 김형우(부), 이명기(모) |
친척 | 김형래(숙부) 정애연(셋째며느리) 김보옥(처제) 이덕화(아랫동서) 이지현(처이질녀) 김경아(처이질녀) 최병서(처이질서) 이예춘(사돈) |
배우자 | 김보애(재결합) 이민자(이혼) 박기자(이혼) |
자녀 | 장남 김진철(이민자 소생) 차남 김진수(이민자 소생) 장녀 김진선(김보애 소생) 차녀 김진아(김보애 소생) 3녀 김리나(김보애 소생) 3남 김진근(김보애 소생) |
수상 |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대종상 남우주연상 대한민국문화예술 보관문화훈장 1986년 제25회 대종상 영화인상 |
김진규(金診奎[2], 본명: 김진규, 본명 한자: 金珍圭[3], 1923년 4월 12일[4] ~ 1998년 6월 18일)는 대한민국의 영화배우이다. 본관은 김녕(金寧)이다.
충청남도 서천에서 출생하였다. 서천보통학교를 졸업 후 자동차 수리공장의 사환으로 일하면서 대전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일본인의 양자가 되어[5] 오이타현 오이타 우좌(宇佐) 농업전문학교를 다녔고 도쿄 우에노 음악학교를 다녔던 바 있으나 모두 중퇴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944년 가수 첫 데뷔한 그는 이후 조선연예주식회사 연구생으로 들어가 1945년 연극《살구꽃》으로 처음 연극배우 무대에 선다. 약초(若草) 연예주식회사 연구부에서 연기를 배운 그는 8·15 광복 후 장동휘 등과 극단 장미를 창립하여 첫 공연으로 '아름다운 새벽'을 무대에 올렸다. 1955년 이강천 감독의《피아골》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면서 영화에 데뷔했다. 이후 1960년대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끄는 배우로 활약했다. 1945년 이민자와 결혼했으나 1959년 이혼했고 같은 해 1959년 김보애와 재혼했으나 1973년 이혼했으며 1976년 박기자와 3번째 결혼했으나 1992년 이혼했고 1997년 김보애와 재결합하여 1998년 사망할 때까지 부부 관계를 다시 유지했다.
한국연극영화배우협회 회장,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김보애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이후 재결합했다. 아들 김진철, 김진수, 김진근, 딸 김진선, 김진아, 김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