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싱더

나라 싱더
납란성덕
납란성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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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본명 (전)나라 청더(納蘭成德)
(후)나라 싱더(納蘭性德)
용약(容若)
가릉산인(楞伽山人), 녹수정(淥水亭), 산호각(珊瑚閣), 수불재(繡佛齋), 원앙관(鴛鴦館), 통지당(通志堂)
신상정보
출생일 1655년 1월 19일(1655-01-19) / 음력 순치(順治) 11년 12월 12일
출생지
사망일 1655년 1월 19일(1655-01-19)(-31세) / 음력 강희(康熙) 24년 5월 30일
사망지 북경(北京) 서쪽 조갑둔(皂甲屯) 나라씨 선산
국적 (淸)
성별 남성
부모 부 : 나라 밍주(納蘭明珠)
모 : 아이신기오로씨(愛新覺羅氏)
배우자 노씨(盧氏)(노흥조盧興祖의 딸)
관씨(官氏)
자녀 아들 : 푸거(富格), 푸르둔(富爾敦)
친인척 고조부 : 양기누(楊吉砮)
증조부 : 긴타이시(金台石)
조부 : 니야카(尼雅哈)
조모 : 모르치씨(墨爾齊氏)
외조부 : 아지거(阿濟格)
빙부 :
빙모 :

나라 싱더(한국 한자: 納蘭性德 납란성덕, 1654년 ~ 1685년)은 중국 초의 사인(詞人). 처음 이름은 성덕(成德), 자는 용약(容若)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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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정황기(正黃旗) 귀족 출신으로, 22세에 진사가 되었으며 강희제(康熙帝)의 측근에 있으면서 재질을 사랑받던 귀공자였으나 31세에 병사했다. 사(詞:餘詩)는 청초 복고 풍조에 따라 다시 번성하여 그 당시 남송 완약파(南宋婉約派)의 주이존(朱彛尊), 북송 호방파(北宋豪放派)의 진유숭(陳維崧)이 쌍벽을 이루었는데 그는 홀로 남당 이후주(李後主)의 양식을 계승하여, 기교에 흐르지 않는 섬세하고 슬픈 감상은 청대 최고의 사인으로 꼽힌다. <음수사(飮水詞)> 1권이 있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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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조부 : 양기누(楊吉砮)
    • 증조부 : 긴타이시(金台石)
      • 조부 : 니야카(尼雅哈)
      • 조모 : 모르치씨(墨爾齊氏)
        • 부 : 나라 밍주(納蘭明珠)
        • 모 : 아이신기오로씨(愛新覺羅氏)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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