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카운츠(Dorothy Counts, 1942년~)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해리 하딩 고등학교에 입학한 최초의 흑인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카운츠의 부모는 나흘 간의 괴롭힘으로 딸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자 딸을 다른 학교로 전학시켰다.
1956년, 40명의 흑인 학생이 백인 학교 전학을 지원하였다.[1] 이것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피어솔 계획이 통과한 이후였다. 1957년 9월 4일에 도로시 카운츠는 15세의 나이로 그 지역의 여러 백인 학교에 지원한 네 명의 흑인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해리 하딩 고등학교에 입학했고,[2] 나머지 세 명의 학생은 센트럴 고등학교를 비롯한 다른 학교에 입학하였다. 백인 시민 위원회의 지도자 존 Z. 월릭의 부인이 소년들에게 "그녀가 들어가지 않게 하라"라고 종용하고, 소녀들에게는 "침을 뱉어라, 소녀들이여, 침을 뱉어라"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침을 뱉도록 요구하면서 등교 첫 날부터 집단 괴롭힘이 시작되었다.[1] 도로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걸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돌을 던지고(대부분은 그녀의 발 앞에 떨어졌다), 등에 침을 뱉었다고 언론에 밝혔다. 사진가 더글라스 마틴은 카운츠가 학교에 등교한 첫 날 군중에게 조롱받는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1957년 올해의 세계보도사진을 수상하였다.[3] 다음 사진은 도로시 카운츠가 학교에 가는 길에 학생들에게 야유를 받는 장면을 담았다.</ref>“1957 World Press Photo of the Year”.</ref>
다음 날에도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학생들은 식사를 하는 카운츠에게 쓰레기를 던졌으며, 교사는 그녀를 무시했다.[1] 그 다음 날, 카운츠는 두 명의 백인 소녀와 친구가 되었으나, 그 친구들 또한 다른 급우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게 되어 곧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1] 카운츠의 가족은 전화로 협박을 받았으며, 가족의 차가 부서지고 사물함의 물건이 절도 당하는 등 나흘에 걸친 광범위한 괴롭힘이 이어진 끝에, 학교의 관리자와 경찰은 카운츠의 아버지에게 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음을 전했고,[4] 아버지는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심하였다.[1] 기자 회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조국에 대한 연민과 우리 딸 도로시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는 딸을 하딩 고등학교 학생에서 제외시키기로 하였습니다. 우리가 학교 울타리 안과 부지 위에서 딸이 신체적 상해와 무례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다고 느꼈다면, 하딩에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바람을 기꺼이 인정했을 것입니다.[1]
가족은 펜실베이니아주로 이주하였고, 카운츠는 필라델피아의 인종 무차별 학교에 입학하였다. 후에 그녀는 존슨 C. 스미스 대학교에서 학위를 수여받았다.[1][4] 그녀는 보육 자원으로 직업 경력을 보냈다.[5]
2008년, 하딩 고등학교는 카운츠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6] 2010년, 카운츠는 1957년에 그녀를 괴롭힌 군중 중 한 명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받았다.[7] 2010년, 하딩 고등학교는 교내 도서관의 이름을 도로시 카운츠-스코긴스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개명하였다. 이러한 영예를 생존한 사람에게 주는 것은 드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