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건덕 竇建德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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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573년 |
사망 | 621년 |
성별 | 남성 |
국적 | 중국 |
경력 | 군웅 |
직업 | 군인 |
활동 기간 | 수말당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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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건덕(중국어 정체자: 竇建德, 병음: Dòu Jiàndé 더우젠더[*], 573년 ~ 621년[1][2])은 중국 수말당초 시기의 군웅으로, 패주(貝州) 장남(漳南)[3] 출신이다. 하북을 점거하고 하(夏)의 왕을 자칭했으나, 호뢰 전투에서 진왕 이세민(李世民)[4]에게 크게 패하고 세력이 소멸되었다. 혼란기 당시 군웅들 중에서도 가장 유능하고 의협(義俠)과 인의(仁義)의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농민 출신으로 일찍이 이장(里長)이 되었고, 대업 7년에 산동지방에 큰 가뭄이 들자 그는 병사를 일으켜 고사달(高士達)에게 투항하여 사병(司兵)으로 임명되었다.
대업 12년에 군사마(軍司馬)가 되었고 고사달이 죽은 후에 스스로 장군으로 칭하고 수십만의 병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대업 13년에 악수(樂壽)에서 스스로 장락왕(長樂王)이라고 칭하였으며, 그 다음해에는 하왕(夏王)으로 칭하였다. 연호를 오봉(五鳳)이라고 하였으며 국호를 하(夏)라고 하였다.
621년에 당나라 장수 이세민(훗날의 당 태종)이 지금의 하남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정나라의 황제 왕세충을 공격했을 때, 당나라가 정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면 자신의 하나라도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아내 조씨(曹氏)와 모사 능경(凌敬)의 충고조차 무시하고 왕세충을 구원하러 나섰다가, 결국 호뢰 전투에서 이세민에게 참패하여 사로잡혔다. 이세민의 아버지인 당 고조 치세 하의 당나라 조정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두건덕의 사후 하나라의 영토는 일시 당나라에 의해 탈취되었으나, 곧 두건덕의 장수였던 유흑달(劉黑闥)이 당나라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서 그의 영토를 다시 점거하였고, 이후 623년까지 당나라에 지속적으로 대항하였다.
전임 수 양제 양광 |
중국 하북의 지배자 617년 ~ 621년 |
후임 한동왕 유흑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