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셀도르프 대관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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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의 대관구 | |||||||||
1930년–1945년 | |||||||||
Flag | |||||||||
1944년의 나치 독일 행정구역 지도. 왼쪽 네덜란드와 맞닿은 회색 영역이 뒤셀도르프 대관구이다. | |||||||||
주도 | 뒤셀도르프 | ||||||||
영역 | |||||||||
• | 2,700 km2 (1,000 mi2) | ||||||||
인구 | |||||||||
• | 2200000 | ||||||||
정부 | |||||||||
대관구지휘자 | |||||||||
• 1930–1945 | 프리드리히 카를 플로리안 | ||||||||
역사 | |||||||||
• 수립 | 8월 1일 1930년 | ||||||||
• 해체 | 5월 8일 194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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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 독일 |
뒤셀도르프 대관구(독일어: Gau Düsseldorf)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존속했던 나치 독일의 대관구이다. 뒤셀도르프 대관구는 프로이센 라인 주의 뒤셀도르프 현 지역이었다. 이전인 1930년부터 1933년까지는 나치당 지역당의 하부 지역 조직 구분 중 하나였다.
원래 나치의 대관구(Gau) 조직은 1926년 5월 22일 나치당 회의에서 지역당 조직 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창립한 구역이었다. 이후 1933년 나치가 독일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독일의 주 단위 행정구역이 당의 대관구 행정구역으로 대체되었다.[1] 이 지역은 원래 요제프 괴벨스가 통치하는 루르 대관구의 일부였으나 1928년에는 베스트팔렌 대관구의 일부가 되었으며, 1930년 독립된 대관구가 되었다.[2]
각 대관구를 지휘하는 대관구지휘자는 점점 더 권력이 세지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외부에서 거의 간섭을 받지 않았다. 지역 대관구지휘자는 정당 행정 뿐 아니라 정부 직책에도 관여하여 선전 감시 등 다양한 작전을 수행했으며, 1944년 9월 이후에는 국민돌격대 소집과 각 대관구 방어작전 역할도 맡았다.[1][3]
뒤셀도르프 대관구의 대관구지휘자는 1930년부터 1945년까지 프리드리히 카를 플로리안 혼자 맡고 있었다.[4][2] 전후 플로리안은 나치당 당적 가입 혐의로 6년형을 받고 수감되었으며, 1951년 석방되었다.[5]
이 대관구는 2,700 km2넓이에 2,200,000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는 대관구 순위 중 중간 쯤에 해당했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