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달레나 데 메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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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렌틸로 공작부인 |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73년 7월 24일 |
출생지 | 피렌체 |
사망일 | 1528년 12월 2일 |
사망지 | 로마 |
가문 | 메디치가 |
부친 | 로렌초 데 메디치 |
모친 | 클라리제 오르시니 |
배우자 | 프란체스케토 키보 |
자녀 | 로렌초 키보 인노센초 키보 카테리나 키보 |
묘소 | 성 베드로 대성당 |
마달레나 데 메디치(Maddalena de' Medici, 1473년 – 1528년)는 피렌체에서 태어난 로렌초 데 메디치의 딸로,[1] 형제 자매들과 함께 안젤로 폴리치아노 같은 인물들에게 인문주의 문화 교육을 받았다.[2] 1487년 2월에 그녀는 교황 인노첸시오 8세의 아들 프란체스케토 키보와 결혼하기로 약혼하였다.[3] 그들은 1488년 2월에 결혼식을 올렸고, 그녀는 4,000 두캇의 지참금을 가져왔다.[3] 이 혼인은 그녀의 가문과 바티칸의 가까운 관계를 가져왔으며, 그녀의 남동생 조반니가 추기경으로 임명되는데 도움을 받기도 했다.[3] 그녀는 그녀는 아버지, 오빠 (피에로), 교황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친구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와 정부 내에서 도움과 직책을 갖도록 하였다.[4]
1488년에 그녀는 스틸리아노에 있는 온천 리조트를 구매했다.[5] 그녀는 그 리조트를 개조하여 수익성 높은 리조트로 만들었다.[5]
마달레나는 1513년에 남동생 조반니가 교황 레오 10세로 선출된 이후 로마에 거주했다.[6] 선출된지 얼마 안돼서, 교황 레오 10세는 누이의 아들 인노센초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6] 마달레나는 1515년 동생에게서 로마 시민권과 펜션을 받았다.[6] 그녀는 그녀의 자녀들 모두가 귀족 가문들과 결혼시키도록 했다.[6] 그녀는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계속했고, 교황 레오 10세, 조카 로렌초와 협상하여 의뢰인 보호, 모금 활동, 감금으로부터의 석방, 망명등을 얻도록 협상했다.[7] 그녀는 로마에서 사망했고, 그녀의 사촌 교황 클레멘스 7세에 명령에 따라 성 베드로 대성당에 묻혔다.
프란체스케토와 마달레나는 7명의 자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