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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 아키라 前田 日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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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네임 | 마에다 아키라 퀵 킥 리 |
출생 | 1959년 1월 24일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다이쇼구 |
신장 | 192 cm |
체중 | 115 kg |
국적 | 일본 |
직업 | 前 프로레슬링 선수 前 종합격투기 선수 Rings CEO |
활동기간 | 1977년 ~ 1999년 |
데뷔일 | 1977년 8월 25일 |
은퇴일 | 1999년 2월 21일 |
트레이너 | 안토니오 이노키 야마모토 코테츠 사야마 사토루 후지와라 요시아키 시저 타케시 칼 고치 |
마에다 아키라(일본어: 前田 日明 まえだ あきら[*]/Akira Maeda, 1959년 1월 24일 ~ )는 일본의 전 프로레슬링 선수이자 전 이종격투기 선수다. 재일 한국인 3세 출신의 한국계 일본인이며 귀화 전 한국명은 고일명(高日明/コ・イルミョン/Go Il-myeong)이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귀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마에다의 집안은 조선시대 왕궁의 호위무사였으며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일본인 살해자를 쫓아 일본으로 들어갔다가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에다 아키라(일본어: 前田 日明 まえだ あきら[*])라는 이름을 그의 할아버지가 명명한 것이고 데뷔 당시에는 지금과 발음은 같지만 한자 표기는 다른 마에다 아키라 (前田 明)였는데 할아버지의 권유로 변경하게 되었다고 훗날 주간 플레이 보이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또한 주간 프로레스 인터뷰 기사에서는 "日자는 본이란 의미이며 할아버지가 붙였다"고 밝혔다. 키는 192cm(6 ft 4 in), 몸무게는 115kg(253 lb)이다. 피니쉬는 브릿지 피셔맨 수플렉스, 크로스 암브레이커, 하이-스피드 하이 킥으로 사용을 한다.
1987년 11월 19일, 코라쿠엔 홀에서 열린 UWF군 대 유신군의 6명 태그 매치에서, 전갈 굳히기를 걸고 있는 쵸슈 리키의 뒤에서 다가와 쵸슈의 안면에 정통으로 킥을 날려버린다. 이 결과로 쵸슈 리키는 오른쪽 이마 동저 골절, 전치 1개월의 중상을 입게 되고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마에다 아키라에게 무기한 출장 정지의 처분을 내리며, 이루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출장 정지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멕시코에 원정을 가라고 했지만 마에다 아키라는 그 제안을 거부했고 결국 1988년 2월 1일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으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아 그의 신일본 커리어는 끝나는 사건이었다.
마에다는 이 사건의 진위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있으나, 피해자인 초슈 리키와는 최근 흥행에서 화해했다고 한다. 참고로 마에다, 초슈(한국명 곽광웅) 두 선수 모두 재일 한국인 출신이다.(마에다와 달리 초슈는 지금도 한국 국적) 하지만 사야마 사토루와는 아직 화해하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