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헌문제
魏 獻文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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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태상황제 | |
재위 | 471년 9월 20일 ~ 476년 7월 20일 |
북위의 제6대 황제 | |
재위 | 465년 6월 21일 ~ 471년 9월 20일 |
즉위식 | 화평(和平) 6년 5월 12일 (465년 6월 21일) |
전임 | 문성제(文成帝) |
후임 | 효문제(孝文帝) |
북위의 황태자 | |
재위 | 456년 2월 22일 ~ 465년 6월 21일 |
즉위식 | 태안(太安) 2년 2월 1일 (456년 2월 22일) |
전임 | 경목태자(景穆太子) 탁발황(拓跋晃) |
후임 | 효문제(孝文帝) 탁발굉(拓跋宏) |
이름 | |
휘 | 탁발홍(拓跋弘) |
별호 | 탁발제두윤(拓跋第豆胤) |
묘호 | 현조(顯祖) |
시호 | 헌문황제(獻文皇帝) |
능호 | 운중금릉(雲中金陵) |
연호 | 천안(天安) 466년 ~ 467년 황흥(皇興) 467년 ~ 471년 |
신상정보 | |
출생일 | 흥광(興光) 원년 7월 5일 (454년 8월 14일)[1] |
사망일 | 연흥(延興) 6년 6월 13일 (476년 7월 20일) (21세) |
부친 | 문성제(文成帝) 탁발준(拓跋濬) |
모친 | 원황후(元皇后) 이씨(李氏) |
배우자 | 사황후(思皇后) 이씨(李氏) |
위 현조 헌문황제 탁발홍(魏 顯祖 獻文皇帝 拓跋弘, 454년 8월 14일(음력 7월 5일) ~ 476년 7월 20일(음력 6월 13일))은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위의 제6대 황제(재위:465년 - 471년). 문성제의 장남이다.
456년에 태자에 봉해지고 465년에 즉위했다. 치세 초기는 나이가 어려 승상 을혼(乙渾)이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는데, 계모 풍태후(馮太后, 문명황후(文明皇后))가 을혼을 살해하자 칭제를 실시했다.
469년에 친정을 개시하고, 장남 탁발굉(효문제)을 태자로 정했다. 삼등 구품의 제를 규정 국내의 통치를 정비하여 다음의 효문제의 전성기의 주춧돌을 쌓아 올렸다.
471년에 태자인 탁발굉(당시 5세)에게 양위하고 스스로를 태상황제(太上皇帝)라고 칭했다.
476년에 풍태후(馮太后)의 미움을 받아 짐살당했다. 당시 22세였다.
헌문제 | 원년 | 2년 | 3년 | 4년 | 5년 | 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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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력 (西曆) |
466년 | 467년 | 468년 | 469년 | 470년 | 471년 |
간지 (干支) |
병오(丙午) | 정미(丁未) | 무신(戊申) | 기유(己酉) | 경술(庚戌) | 신해(辛亥) |
연호 (年號) |
천안(天安) 원년 |
2년 황흥(皇興) 원년 |
2년 | 3년 | 4년 | 5년 |
전 대 문성제 |
제6대 북위 황제 465년 ~ 471년 |
후 대 효문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