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8월 24일 이른 아침, 독일과 소련은 10년 기간의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의 비밀 조항에는 독일과 소련의 북유럽과 동유럽 영향 영역 분할도 있었다. 10월 6일 소련의 폴란드 침공 이후, 소련은 핀란드와 발트3국에게 압력을 넣어 상호 원조 조약을 체결했다. 소련은 9월 18일 폴란드 잠수함의 오르젤 사건을 빌미로 에스토니아의 중립을 추궁했다. 7일 후인 9월 24일, 모스크바는 에스토니아에게 최후 통첩을 내렸다. 소련은 에스토니아에게 상호 군사 기지 구축과 지원 조약을 체결했다.[6][7] 에스토니아는 해군에게 선택권이 없었으며, 공군과 육군은 팔디스키 2개 섬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6] 이 조약은 1939년 9월 28일 서명되었다. 라트비아는 10월 5일, 리투아니아는 10월 10일 체결되었다. 이 조약들은 유럽의 전쟁 기간 동안 소련의 군사 기지 구축을 허용하고[7] 에스토니아에서 25,000명, 라트비아에서 30,000명, 리투아니아에서 20,000명의 소련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1939년 소련은 핀란드에게 소련의 유사한 요구인 군사 기지 구축을 거부했다. 따라서, 소련은 핀란드를 1939년 11월 공격함으로써 겨울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1940년 3월 핀란드의 패배로 영토 손실이 이루어졌으나, 주권은 유지되었다. 발트 3국은 겨울 전쟁 당시 중립이었으나, 소련은 이 예시로 소련과의 관계를 가졌다.[8]
↑Taagepera, Rein (1993). 《Estonia: return to independence》. Westview Press. 58쪽. ISBN978-0-8133-1199-9.
↑Ziemele, Ineta (2003). “State Continuity, Succession and Responsibility: Reparations to the Baltic States and their Peoples?”. 《Baltic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 (Martinus Nijhoff) 3: 165–190.
↑Kavass, Igor I. (1972). 《Baltic States》. W. S. Hein. The forcible military occupation and subsequent annexation of the Baltic States by the Soviet Union remains to this day (written in 1972) one of the serious unsolved issues of international law
GULAG 113 – Canadian film about Estonians mobilized into the Red Army 1941 and forced into labour in the GULAG
Soviet Aggression Against the Baltic StatesArchived 2008년 10월 11일 - 웨이백 머신 by (Latvian Supreme Court justice) Augusts Rumpeters — Short and thoroughly annotated dissertation on Soviet-Baltic treaties and relations. 1974. Full text
Non-Recognition in the Courts: The Ships of the Baltic Republics by Herbert W. Briggs. In The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Vol. 37, No. 4 (Oct., 1943), pp. 585–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