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1동 水踰1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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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Suyu 1(il)-dong |
행정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북구 |
행정 구역 | 26통, 217반 |
법정동 | 수유동 |
관청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로 299 |
지리 | |
면적 | 1.07 km2 |
인문 | |
인구 | 20,594명(2022년 2월) |
세대 | 10,153세대 |
인구 밀도 | 19,200명/km2 |
지역 부호 | |
웹사이트 | 수유1동 주민센터 |
수유2동 水踰2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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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Suyu 2(i)-dong |
행정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북구 |
행정 구역 | 24통, 218반 |
법정동 | 수유동 |
관청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한천로 1117 |
지리 | |
면적 | 0.73 km2 |
인문 | |
인구 | 21,205명(2022년 2월) |
세대 | 9,289세대 |
인구 밀도 | 29,000명/km2 |
지역 부호 | |
웹사이트 | 수유2동 주민센터 |
수유3동 水踰3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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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Suyu 3(sam)-dong |
행정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북구 |
행정 구역 | 29통, 235반 |
법정동 | 수유동 |
관청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노해로 36 |
지리 | |
면적 | 0.86 km2 |
인문 | |
인구 | 23,024명(2022년 2월) |
세대 | 11,932세대 |
인구 밀도 | 27,000명/km2 |
지역 부호 | |
웹사이트 | 수유3동 주민센터 |
수유동(水踰洞)은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위치한 행정동이자 법정동이다. 법정동 수유동은 행정동 수유1~3동 및 인수동의 전부와, 우이동의 남쪽 일부를 관할한다.
수유1동은 북한산국립공원 지역으로 화계사, 삼성암, 빨래골 일대과 도봉로변 상업 지역인 수유시장 주변에 영세 상가가 밀집되어 있으며, 주택 및 저소득 불량주택 밀집 지역 등 생활 여건이 다양하다.[1] 수유2동은 우이천을 경계로 북쪽으로는 도봉구 쌍문1동과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노해로를 경계로 수유3동과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삼양로를 경계로 우이동과 인수동에 접하고 있으며, 일반주택과 아파트·중소점포 등이 혼재하는 지역으로 생활수준은 중산층이 주류를 이루는 비교적 안정적이며 강북구의 생활권 중심지역으로 개발되는 지역이다.[2] 수유3동은 관내에 강북구청이 위치하고 수유역 및 3대 간선도로가 있는 상가 밀집 지역과 복개천 및 우이천변 주위의 일반주거지역으로 혼합 형성된 지역이다. 상하수도 및 도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고, 주거환경이 깨끗하며, 중상류층의 생활수준을 이루고 있으나, 구립 어린이집, 주민휴식공간, 주차장 등 후생복지시설이 부족하여 불편한 점도 있다.[3] 수유4동은 행정동명을 법정동명과 일치시키기 위해 우이동으로 변경하였으며, 수유5동과 6동은 합쳐서 행정동 인수동으로 변경하였다.
수유동 동명의 유래는 두 가지로 전해져 온다. 하나는 북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이 마을을 넘쳤기 때문에 '물 수' 자와 '넘칠 유'(踰) 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우리말로는 ‘물이 넘친다’[水踰]고 하여 ‘무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옛날 수유리와 인접해 있는 삼양동이라는 곳에 삼형제가 살았는데 맏형은 바보이고, 둘째는 개구쟁이며, 셋째는 두 형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이들 삼형제는 힘을 합쳐 자기 땅을 확보하고자 싸움을 일삼고 다니므로 이 곳 주민들이 이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빨래골의 개울을 경계로 막았는데 그 개울물이 넘쳐 흘러 수유리라 했다고 하나, 주민들은 동명의 유래에 대해 전자의 전설을 이야기하는 이가 많다.[4]
이곳의 전통 지명으로는 가오리, 빨래골, 화계 등이 있다. 가오리(加五里)는 조선 초기에 도성으로부터 10리 거리에 있는 지역을 성저십리라 하여 한성부에 포함시킬 때, 이 일대의 지형이 십 리를 정확히 특정하기 어려워, 5리를 더 간 곳에서 경계를 삼았다 하여 붙은 지명이다.[5] 빨래골은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맑아, 궁궐의 무수리들이 이곳까지 와서 빨래를 하였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6] 화계 또는 화계골은 화계사가 자리잡은 계곡을 꽃이 많다는 뜻에서 ‘꽃골[花溪→華溪]’이라고 부른 것이 그대로 지명으로 정착한 것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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