켁스홀름은 라도가호 서북연안의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으로, 핀란드어로는 캐키살미라고 한다. 1605년 스웨덴에 할양되었다. 할양되었을 당시 주민들은 대부분 핀란드어를 구사하는 정교회 신자였다. 17세기에 스웨덴 루터교는 정교회를 탄압했으며, 이웃한 핀란드의 사보로부터 루터교도 핀인들의 영향을 받아 루터교로 개종되었다.
러시아어로 잉그리아, 핀란드어로는 잉케리라고 부르는 땅이다. 발트해와 라도가호 사이의 카리알라 지협 남쪽 지역에 해당한다. 잉그리아 전쟁으로 1617년 스웨덴이 러시아로부터 뜯어왔다. 1세기 뒤 표트르 1세가 다시 빼앗아가면서 여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다(1703년). 1721년 뉘스타드 조약으로 공식적으로 스웨덴이 소유권을 포기했다.
1645년 브룀스브로 조약과 1658년 로스킬데 조약으로 비로소 스웨덴의 영토가 남쪽으로 팽창했다. 노르웨이로부터 블레킹에와 보후슬렌, 덴마크로부터 스코네와 할란드를 뜯어왔고, 스코네 전쟁에서 포메른을 잃으면서도 이 지역들은 지켜냈다. 평화조약에 따르면 이 지역들은 덴마크 시절의 법을 유지할 권리가 보장되었으며, 즉 초기에는 내지가 아닌 소유지였다. 이후 점차적으로 동화를 시켜서 1721에야 동화가 완료되었다.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이후 맺어진 킬 조약(1814년)에서 스웨덴은 스트랄준트와 뤼겐섬을 덴마크에 할양하는 대신 노르웨이 왕위를 스웨덴 왕이 받기로 했다. 하지만 포어포메른의 주권은 덴마크가 아닌 프로이센이 삼켰고, 프로이센은 두 포메른을 합쳐서 포메른도를 만들었다. 노르웨이는 독립을 선언했으나 진압되고 스웨덴-노르웨이 동군연합이 수립되었다.
한자동맹 자유시였던 비스마어는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스웨덴으로 넘어갔고 스웨덴 왕이 비스마어 공작이 되었다. 1803년 비스마어는 스웨덴이 진 빚을 탕감하기 위해 메클렌부르크에 넘겨졌다. 이 빚은 1903년 디폴트되었지만 스웨덴은 이 독일 땅의 월경지를 되찾을 권리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