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즈 다다요시 島津 忠義 | |
시마즈 다다요시 | |
마루에 열십자 | |
제29대 시마즈 종가 당주 1858년 ~ 1897년 | |
신상정보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메이지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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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40년 5월 22일 |
사망 | 1897년 12월 26일 |
개명 | 소노스케(壮之助, 아명) 다다노리(忠徳, 첫 이름) 모치히사(茂久) |
별명 | 통칭: 마타지로(又次郎) |
신호 | 照国大明神 |
막부 | 에도 막부 |
관위 | 종1위, 참의 |
씨족 | 시마즈씨(島津氏) |
부모 | 아버지: 시마즈 히사미쓰 양부: 시마즈 나리아키라 |
자녀 | 다다시게, 다다히로, 구니요시 왕비 지카코 등 |
묘소 |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 이케노우에 정 |
시마즈 다다요시(일본어: 島津 忠義 시마즈 타다요시[*], 1840년 5월 22일 ~ 1897년 12월 26일)는 막말의 다이묘이자 메이지 시대의 화족이다. 사쓰마번의 제12대 번주로 시마즈씨 제29대 당주이다. 관위는 종1위하 참의, 훈등은 훈1등, 작위는 공작이다.
아명은 소노스케(壮之助), 통칭 마타지로(又次郎)이다. 원복 후 첫 이름은 다다노리(
시마즈씨의 분가인 에치젠 가의 당주 시마즈 히사미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부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양자가 되어, 1858년(안세이 5년) 나리아키라 사후 그 유언에 따라 호적을 잇게 되었다. 유언은 나리아키라의 아들 아키라마루(哲丸)가 어리기 때문에 임시로 입양한 형태였지만, 아키라마루도 어려서 사망했다. 그러나 번정의 실권은 당초 조부 시마즈 나리오키(島津斉興)와 후견인이 된 아버지 히사미쓰와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등에게 장악되어 다다요시 자신은 젊은이라고 하여도 주체성을 발휘하지 못했다.(그러나 다다요시가 실권을 되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사쓰마 번이 일치단결하여 도막운동을 하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었다)
전임 시마즈 나리아키라 |
제29대 시마즈 가문 당주 1858년 ~ 1897년 |
후임 시마즈 다다시게 |
전임 시마즈 나리아키라 |
제12대 사쓰마번 번주 1858년 ~ 1869년 |
후임 판적봉환 |
사쓰마번 번지사 1869년 ~ 1871년 |
후임 폐번치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