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의 아키타 폭격, 아키타 공습(일본어: 秋田空襲 아키타쿠슈[*]), 쓰치자키 대공습(일본어: 土崎大空襲 쓰치자키다이쿠슈[*])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 전역 수행 기간이었던 1945년 8월 14일 미국 공군이 시행한 일본 아키타현 아키타시에 대한 전략폭격이다.[1] 이 폭격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시행한 전략폭격 중 최장거리 공습이었으며 일본의 항복 직전 마지막으로 있었던 공습이다.[2]
쓰치자키는 동해 연안 도호쿠 지방의 마을로, 철도로 이어져 있고 야바세 유전와 같이 채굴 가능한 근처 유전에서 수입해 온 원유를 정제하는 정유 공장(현 ENEOS 아키타 정유소)이 있는 중요한 곳이었다.[3] 이 마을은 1941년 4월 1일 인근 도시인 아키타시로 병합되었다. 이 지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 중 하나였으나 위치 문제로 전략폭격 작전 초기엔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즉 종전 직전까지도 석유 관련 시설들은 타격받지 않고 온존히 보존되어 있었다.
일본의 항복 전날 밤인 1945년 8월 14일,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 314기를 동원한 미국 공군(USAAF) 제315폭격편대가 쓰키자키 시 중앙부로 소이폭격을 하러 출격했다.[4]
폭격기 편대는 일본 시각 기준 8월 14일 밤 10시 30분에 폭격을 시작하여 8월 15일 오전 3시 30분까지 100kg 폭탄 7,360개와 50kg 폭탄 4,687개를 투하했다. 이 폭격으로 니혼 오일 정유소(현재의 JX 니혼 오일 & 에너지)와 인근 항구가 초토화되었으며, 화재가 인근 마을까지 번졌다. 이 폭격으로 민간인 포함 250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5]
15일 새벽에는 쓰치자키에서 동남쪽으로 80 km 떨어진 오가치군 니시나루세촌(현재의 요코테시)에 3발의 포탄이 투하되었는데 쓰치자키 공습에서 남은 잉여 폭탄을 투하했거나 인근의 요시노 광산을 목표로 폭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공습으로 발생한 인적피해는 없었다.[6]
본 공습은 미군이 수행한 마지막 공습 작전이자[7] 아키타현에서 시행된 유일한 대규모 공습이기도 하다.[8]
This superfortress strike unwittingly collapsed a coup in progress at the Japanese Imperial Palace and saved Tokyo from a nuclear strike and ended World War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