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개인 정보 | ||||||
본명 | Armando Ribeiro de Aguiar Malda | |||||
출생일 | 1971년 1월 16일 | (53세)|||||
출생지 | 스페인 소펠라나 | |||||
키 | 1.80m | |||||
포지션 | 골키퍼 | |||||
청소년 구단 기록 | ||||||
1986–1988 1988–1990 |
우헤라가 로그로녜스 | |||||
구단 기록* | ||||||
연도 | 구단 | 출전 (득점) | ||||
1990–1992 1992–1994 1994–1998 1994–1995 1998–1999 1999–2008 2008 2008–2010 합계: |
로그로녜스 B 스포르팅 히혼 알라베스 → 베르메오 (임대) 바라칼도 카디스 → 아틀레틱 빌바오 (임대) 아틀레틱 빌바오 |
9 (0) 5 (0) 36 (0) 18 (0) 267 (0) 16 (0) 3 (0) 388 (0) | 34 (0) ||||
국가대표팀 기록 | ||||||
2005 | 바스크 국가 | 1 (0) | ||||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
아르만도 리베이로 데 아기아르 말다(스페인어: Armando Ribeiro de Aguiar Malda, 1971년 1월 16일, 바스크 주 소펠라나 ~)는 흔히 아르만도(스페인어: Armando)로도 알려진 스페인의 전직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었다.
그는 현역 20년 중 대부분을 카디스(도합 9시즌, 스페인의 1부에서 3부 리그에 모두 출전)에서 보냈고,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라 리가 4시즌에 참가한 뒤 현역에서 은퇴하였는데, 그는 빌바오 소속으로 총 44경기에 출전했다.
아르만도는 비스카이아 도 소펠라나 출신이다. 여러 하부 리그 구단 소속으로 활약하던 그는 알라베스에서 2부 리그 소속으로 3년을 보냈지만 별 인상을 남기지 못했고, 카디스에서 9년을 보내면서 2004-05 시즌에는 2부 리그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고, 이듬해 라 리가에서도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안달루시아 연고 구단은 1년 만에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1]
2008년 1월, 카디스는 주전 골키퍼 고르카 이라이소스를 무릎 부상으로 잃은 아틀레틱 빌바오에 아르만도를 수혈하여 6개월 동안 공백을 메우게 했다.[2] 3월 15일, 베티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그는 20분을 남기고 2-1로 빌바오가 앞서가는 와중에 베티스 관중이 던진 병을 맞았다. 그는 눈두덩이에 난 상처를 여섯 바늘 꿰메야 했고,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은 아틀레틱의 몰수승을 선언했다.[3][4]
시즌 말, 그는 임대 기간이 끝나고 바스크 연고 구단으로 완전 이적하였고, 이라이소스가 복귀하면서 이냐키 라푸엔테에 서열에서 앞선 아르만도는 후보 골키퍼가 되었다. 그는 2008-09 시즌에 단 두 차례 출전했는데, 한 번은 2009년 2월 28일에 1-2로 패한 세비야와의 안방 경기로,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은 당시 코파 델 레이 준결승 2차전을 앞두고 주전 선수를 모두 뺐고, 그가 출전한 나머지 경기는 또 세비야 연고 구단과의 경기였는데,[5] 베티스와의 산 마메스 안방 경기에서 1-0으로 이겼는데, 이 경기도 같은 사유로 출전했다.(바르셀로나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 대비)[6]
3경기에 출전한(이 중 2경기는 코파 델 레이 경기이고, 나머지 한 경기는 리그 최종전이었다) 2009-10 시즌 후, 아르만도는 은퇴하였다. 그의 마지막 리그 경기는 2010년 5월 15일, 라싱 산탄데르와의 경기로, 39세 119일로 구단 역사상 최고령 출전 선수로 기록을 경신했다.[7] 그 후, 그는 다음 시즌에 감독진의 일원으로 합류했다.[8]
2016년 10월, 아르만도는 바스코니아(아틀레틱 빌바오의 유소년 [[팜팀|위성 구단)의 골키퍼 코치를 역임했는데, 비토리아와의 경기에서 그의 아들 알라인과 적수로 만났었다. 알라인은 비토리아의 미드필더로 2017년 3월에 그의 부친과 재회했다.[9]
그의 작은 아들 이반도 축구선수로, 아틀레틱 레사마의 유소년부를 거쳤고,[10] 다노크 바트에서도 활약했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