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 야구에 있어서 일본인 우타자 시즌 최다 안타 기록 보유자(193안타 = 2014년)이다. 2015년에는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홈런왕·도루왕을 동시에 획득[2]하면서 최종적으로는 타격 부문 9관왕을 석권했다.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트리플 쓰리 3회 달성자이며 이를 계기로 ‘미스터 트리플 쓰리’(ミスター・トリプルスリー)라는 별명이 붙었다.[3] 또한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프로 야구 선수로서는 최초로 최다 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공수도와 축구를 했고, 가냘프고 차분했으나 운동 신경은 뛰어났다.[4] 초등학교 2학년 때 다카라즈카 리틀 리그 팀에서 외야수로서 야구를 시작했다. 당시 리그에서 활약했을 당시 아나다 마사키와는 팀 동료였다. 고텐야마 중학교 재학 시절에는 소년 리그팀에서 소속돼 주로 내야수로서 활약했다. 야마다는 당시를 회상하며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프로에 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라고 말했다.[5]
리세이샤 고등학교에 진학과 동시에 가족끼리 이 학교가 소재하고 있는 오사카부도요나카시로 이사했다.[6] 리세이샤 고등학교 시절에는 1학년 여름부터 벤치에 들어가 2학년 여름에는 주전 2루수였고 2학년 가을부터 주전 유격수로서 활약, 3학년 봄에는 고도의 집중력을 보일 정도의 높은 수비력과 4할 3푼 5리의 높은 타율로 팀을 이끄는 등 오사카 대회 우승과 긴키 대회에서의 준우승을 이끌었다.[7] 3학년 여름에 열린 제92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2차전(첫 경기) 상대 팀이자 나카무라 쇼고가 소속된 덴리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홈으로 도루를 성공시켜 리세이샤 고등학교의 하계 고시엔 대회 첫 승리에 기여했다. 세이코가쿠인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는 상대 투수 사이우치 히로아키로부터 홈런을 때려냈지만 팀은 패했다. 훗날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하게 되는 이노우에 고타는 야마다의 홈런을 보고 리세이샤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8] 더욱이 고등학교 1년 후배로는 사카모토 세이시로가 있었다.
2010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오릭스 버펄로스로부터 낙첨 1순위로 지명을 받았고[9] 추첨 결과 야쿠르트가 교섭권을 획득했다. 11월 25일에는 연봉 720만 엔에 가계약을 맺었고[10] 자신에게 있어서 야쿠르트는 가장 가고 싶은 구단이었다고 말했다.[11]
입단 첫 해에 2군에서 타율 2할 5푼 9리, 5홈런이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끝나 시즌 중의 1군 출전은 이루지 못했지만 1군에서 유격수를 지키고 있던 선수의 잇단 부상이나 교육 리그에서의 호조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아[12]주니치 드래건스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2차전에서 1번 타자 겸 유격수로서 선발 출전했다.[13] 4타수 무안타로 끝났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고졸 신인 야수의 선발 출전은 야마다가 사상 최초였다.[14] 3차전에서는 야마이 다이스케로부터 볼넷을 고른 첫 출루와 아오키 노리치카의 적시타로 첫 득점을 기록했다. 4차전에서는 가와이 유다이로부터 우익 선상으로 떨어지는 2루타로 첫 안타, 아사오 다쿠야로부터 적시타를 때려내는 등의 첫 타점을 기록해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15]
유격수로서 출전했지만 수비력에 문제점이 노출된 것과 다나카 히로야스의 타격 부진에 의해 5월의 1군 승격 이후에는 고정 2루수로서의 출장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타율은 2할 8푼 3리로 타격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 또 10월 6일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마에다 겐타로부터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종반까지 홈런이 나오지 않아서 장타력은 발휘하지 못했지만 선구안을 살려내며 출루율 0.354와 9개의 도루를 기록하는 등 고졸 출신으로는 프로 3년 만에 1군에서의 일정한 성적을 남겼다.
스기무라 시게루 타격 코치와의 ‘맨투맨 지도’에 의해 타격이 크게 향상된[16] 4월부터 9월에 걸쳐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최초로 6개월 연속 첫회 선두 타자 홈런을 달성했다.[17]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2차전에서는 홈런을 포함한 2안타를 기록하면서 올스타전 감투 선수상을 수상했다.[18] 8월에는 리그 1위에 해당되는 41개의 안타를 기록하여 자신으로서는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19] 10월 6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에서는 네 번째 타석에서 이 날 안타 3개째를 날렸는데 1950년에 한신 타이거스의 후지무라 후미오가 기록한 일본인 우타자의 시즌 통산 191안타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이어지는 8회의 1사 만루 상황에서 맞이한 다섯 번째 타석에서 야마구치 슌으로부터 역전 만루 홈런을 날리면서 신기록을 수립했다.[20] 최종적으로 193개의 안타를 기록하여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고 수위 타자 경쟁을 벌인 끝에 최종적으로 0.324의 높은 성적을 남겼다. 작년에 이어 뛰어난 선구안을 보여주며 장거리 타자로 경계받는 상황도 늘어나면서 볼넷은 전년도 대비 배 이상인 81개를 기록해 출루율은 40%를 넘어섰다. 더욱이 공을 맞히는 능력 이상으로 장타력에 관해서는 눈부시게 향상됐다. 작년부터 홈런은 26개가 늘어 29홈런을 기록했고 2루타는 리그 1위인 39개를 기록했다. 스기무라 코치는 당초 야마다를 광각에 타구를 날리는 중거리 타자를 목표로 하도록 지도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출루율의 장거리 타자로 탈바꿈시켰다.[21] 장타율·출루율 모두 크게 향상됨에 따라 OPS 0.941은 리그 2위, wRAA 48.4는 리그 1위를 기록하여 2루수로서 매우 뛰어난 타격 능력을 보였다.[22] 시즌 종료 후인 10월 9일에 미일 야구 2014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는 사실이 발표됐다.[23] 또한 이 대회에서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루수로서 출전했다.[24]
시즌 개막을 앞둔 2월 16일에 ‘GLOBAL BASEBALL MATCH 2015 사무라이 재팬 대 유럽 대표’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25] 3월 10일, 1차전에서는 8번·1루수로 선발 출전했고[26] 3월 11일 2차전에선 2번·2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홈런을 기록했다.[27] 스기무라 코치로부터 시즌 전에 트리플 쓰리를 달성해낼 수 있는 소질을 갖고 있다는 기대를 받았다.[28]
정규 시즌 초반인 3, 4월에는 2할 6푼 9리의 낮은 타율로 부진을 겪었지만 5월 이후에는 안정감을 되찾아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 8월 22일 주니치전에서 3타수 연속 홈런을 날렸고, 그 전날 마지막 타석에서부터 통산으로서의 프로 야구 타이 기록이 되는 4타수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29] 이 연속 홈런으로 그해 시즌 홈런을 31개로 늘리면서 자신으로서는 첫 30홈런을 달성했다.[30] 9월 6일 히로시마전에서는 30개째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트리플 쓰리를 결정지었다.[31] 팀에서는 유일하게 전 경기 풀 이닝 출전을 이루면서 타율 3할 2푼 9리, 38홈런, 100타점, 도루 34개 등 모두 최고 성적을 남겨 2002년 마쓰이 가즈오 이래 프로 야구 역대 9번째이자, 구단으로서는 최초로 트리플 쓰리를 달성했다.[32] 23세 나이에 달성한 것은 센트럴 리그 최연소 기록이다.[33] 트리플 쓰리, 100타점을 동시에 달성한 것은 1950년 벳토 가오루·이와모토 요시유키가 달성한 이래 65년 만이며 프로 야구 역대 세 번째 사례이다.[32] 월간 MVP는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연속으로 선정[34]됐는데 센트럴 리그 야수로서 월간 MVP를 3개월 연속 수상한 사례는 2007년의 알렉스 라미레스(2007년 7월 ~ 9월) 이래 달성한 쾌거였다.[35] 시즌 도중 마나카 미쓰루 감독의 방침으로 2번 가와바타 신고, 3번·야마다, 4번 하타케야마 가즈히로로 고정된 후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타율·안타·타점은 각각 리그 2위를 기록한 것 외에도 홈런왕,[주 1]도루왕, 최고 출루율 등의 타격 부문 타이틀을 연거푸 석권하여 그 해에 리그 우승한 야쿠르트 타선의 중심이 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홈런왕과 도루왕 타이틀을 동시에 획득한 것과 트리플 쓰리를 달성하면서 도루왕을 획득하는 것은 모두 사상 최초[36][37]이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에서는 3차전에서 일본 시리즈 사상 최초인 한 경기 3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주 2] 팀은 1승 4패로 패했지만 자신은 일본 시리즈 감투상을 수상했다.[39]NPB AWARDS에서는 2년 연속으로 베스트 나인과 센트럴 리그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40]
시즌 종료 후인 12월 8일, 도쿄의 구단 사무소에서 가진 계약 협상에 임하면서 다음 시즌부터의 등번호가 그해까지 23번부터 1번으로 변경됐다는 사실을 구단 측이 공식 발표했고[41] 이날 현장에 참석한 아오키 노리치카로부터 등번호 1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건네받았다.[42] 연봉은 약 8,000만 엔에서 대폭 상승한(1억 4000만 엔 상승) 약 2억 2,000만 엔으로 서명했다.[43] 고졸 출신 야수로서의 2억 엔 도달은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와 맞먹는 역대 가장 빠른 기록이 됐다.[44]
시즌 개막을 앞둔 2월 15일에 ‘사무라이 재팬 평가전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의 일본 대표팀에 발탁됐다.[45] 정규 시즌에서는 6월엔 2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3할 4푼 6리, 28안타, 10홈런, 28타점을 기록했는데 이 중 타율, 홈런, 타점이 리그 1위의 성적을 남긴 공로로 자신으로서는 5번째의 월간 MVP를 수상했다. 더욱이 야쿠르트에서 5번째의 월간 MVP 수상은 알렉스 라미레스와 맞먹는 구단 타이 기록이다.[46] 그러나 7월 30일 요미우리전(도쿄 돔)에서 다하라 세이지가 던진 공이 등에 맞았다.[47] 이후에도 경기에 계속 출전했지만 8월 9일 주니치전(나고야 돔)에서 통증을 호소하며 경기 도중에 교체됐다. 왼쪽 8번째 늑골뼈좌상이라는 진단 결과가 나오면서 이 부상으로 인해 출장 등록이 말소됐다.[48] 2주 간의 말소를 거쳐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에는 많이 회복되는 조짐을 보였으나 9월 11일 한신 타이거스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이와사다 유타가 던진 직구가 또 한 번 등에 맞았다.[49] 두 차례의 몸에 맞는 볼로 인해 타격 성적은 하락세를 보였으나 최종적으로 타율 3할 4리, 38홈런, 30도루로 2015년에 이어 트리플 쓰리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2년 연속으로 여러 차례 달성한 것은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처음이다.[50] 또한 2년 연속으로 도루왕을 차지했다. 시즌 종료 후인 10월 18일에 ‘사무라이 재팬 - 야구 네덜란드 대표, 야구 멕시코 대표 평가전’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51]
하반신 상태가 좋지 않은 와중에도 팀에서 유일하게 전 경기 풀이닝 출전 기록을 달성했다.[52] 하지만 시즌을 통해서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고[53] 최종적으로는 타율 2할 4푼 7리, 24홈런, 14개의 도루를 남겨 트리플 쓰리에는 크게 못 미치는 결과를 보였다.[54][55] 최종전 후에는 팀의 거듭된 부진으로 전력이 약화되면서 결국 96패라는 최악의 패전 성적을 남겼고, 자신도 타격 부진으로 인해 분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56]
새해 벽두부터 트리플 쓰리를 잡아내겠다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고[57][58] 전년도의 부진에서 벗어나 시범 경기에서부터 안정된 성적을 남겼다.[59][60] 5월 11일 DeNA전에서 시즌 10호 솔로 홈런을 때려낸 것을 계기로 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기록을 달성했다.[61] 6월 28일 주니치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9회말에 3점 홈런을 때려내 프로 8년 만에 처음이 되는 끝내기 홈런(끝내기 볼넷을 제외)이 됐다.[62][63] 7월 9일 요미우리전(시즈오카 구사나기 구장)에서는 역대 66번째이자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선수로선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64] 7월 20일 주니치전(메이지 진구 야구장)부터 8월 4일 한신전(교세라 돔 오사카)까지 12경기 연속 타점을 기록했다. 이것은 일본 프로 야구에서 1986년 랜디 바스에 뒤를 이은 역대 2위의 기록이며 일본인으로서는 역대 최장 기록이다.[65][66][67] 8월 31일 히로시마전에서 2년 만에 30도루를 기록했다.[68][52] 이 상황에서 승부에 강한 타격을 보여주는 등[69][70] 최종적으로는 타율 0.315, 34홈런, 33도루를 남기는 등 자신의 통산 세 번째인 트리플 쓰리를 달성했다.[71] OPS도 1.014를 기록하며 팀의 강력한 타선을 이끌었다.[72] 오프에는 2년 만의 베스트 나인에도 선정됐다.[73]
4월 26일 요미우리전에서 상대 투수 스가노 도모유키로부터 아오키 노리치카·야마다·블라디미르 발렌틴에 의한 3자 연속 홈런을 기록[74]했고 한달 후인 5월 26일에는 같은 3명이서 또다시 3자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75][주 3] 9월 4일 히로시마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시즌 33호 쐐기 만루 홈런을 때려내며 개인 통산 200호에 도달했다. 27세 1개월에서의 200호 홈런을 기록한 것은 역대 5번째로 가장 젊었고 야쿠르트 구단에서는 최연소 기록으로 발렌틴에 이어 8번째인 200호를 달성하게 됐다.[77] 또 9월 14일 DeNA전에서 도루를 실패할 때까지 전년도부터 이어지고 있던 38연속 도루 성공 기록을 계속 수립하면서 프로 야구 신기록을 세웠다. 시즌 전체적으로 타격 성적에서는 30홈런·30도루는 달성했지만 타율은 2할 7푼 대에 그쳤고 트리플 쓰리 4회 달성에는 이루지 못했다. 12월 24일에는 7,000만 엔이 상승한 추정 연봉 5억 엔에 재계약을 맺었다.[78]
개막 이후부터 2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내는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지만 그 이후로는 상반신의 상태가 안 좋을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여 결장이나 등록 말소에 의해서 회복에 전력을 다하는 시기도 있었다. 6월 28일 요미우리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6회 1사 만루 상황에서의 타석에서 후지오카 다카히로를 상대로[79], 8월 30일 DeNA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2회 2사 만루 상황에서의 타석에서 사카구치 고스케를 상대로 각각 만루 홈런을 때려내는 등[80] 그해 2개의 만루 홈런을 쳤다. 9월 20일 히로시마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나카무라 유타를 상대로 하마다 다이키·아오키 노리치카·야마다까지 2년 연속으로 3자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81][82][83] 최종적으로는 규정 타석에 처음 도달한 2014년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에 허덕이며 출루율, 장타율, OPS를 기록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9월 3일에는 국내 FA권을 취득[84]하여 자신의 거취에 대한 시선이 쏠렸는데[85][86][87] FA권을 행사하지 않고 잔류를 결심해 새로이 추정 연봉 5억 엔+성과급 지급의 7년간 재계약을 맺었다.[88][89][90][91][92] 또한 ‘같은 환경에 있으면 어느 경우에도 무한한 신뢰나 애정을 얻을 수 있다라고 생각해서’라는 이유로 팀의 주장을 맡겠다고 선언했다. 다음 해인 2021년 시즌부터 아오키 노리치카를 대신해 팀의 주장을 맡게 됐다.[93]
개막 이후부터 부진이 계속됐는데[94] 교류전을 기점으로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렸다.[95][96][97][98][99] 자신의 6번째로 출전한 올스타전에서는 1차전(7월 16일)에서 29세의 생일을 맞이했기 때문에 센트럴 리그 출전 선수들의 기념 촬영 시에 생일 축하를 받았다.[100][101] 9월 26일 주니치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3회에 상대 투수 오가사와라 신노스케로부터 시즌 30호 만루 홈런을 때려냈다.[102] 이로써 30홈런은 2019년 이래 5번째가 됐고 야쿠르트 구단에서는 발렌틴(8차례), 이케야마 다카히로(5차례)에 이어 기록됐다.[103] 4회에는 적시타, 6회에는 이날 두 개째 홈런을 터뜨려 2홈런 7타점의 활약을 펼쳤다.[104][105] 시즌 내내 발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의 영향으로 도루 시도는 크게 줄었지만 리그 4위에 해당되는 34홈런, 리그 3위인 101타점, 리그 4위인 OPS 0.885를 기록했다. 2016년 이후가 되는 30홈런·100타점 이상을 기록하며 역시 30홈런·100타점 이상을 기록한 무라카미 무네타카와 함께 강력한 3·4번 콤비를 형성했다.[106] 또한 팀의 주장으로서도 위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 투수를 진정시켜 벤치에서는 젊은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하는 등 2년 연속 최하위로 허덕이고 있던 팀을 이끌어 6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하는 역할을 했다.[107][108]오릭스 버펄로스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에서는 5차전 8회에 상대 투수 타일러 히긴스로부터 동점 3점 홈런을 치며 오스기 가쓰오, 이케야마 다카히로와 맞먹는 구단 최다 타이 기록인 일본 시리즈 4홈런째를 기록했다.[109] 일본 시리즈 전체적으로 타율 0.167이라는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지만 최종적으로 20년 만에 팀 통산 6번째의 일본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110] 전년도의 부상과 타격 부진에서 벗어나는 등의 활약을 보인 시즌을 보냈다. 내년 시즌에 대해서는 자신의 4번째 트리플 쓰리를 달성하는 것과 첫 골든 글러브상 수상을 목표로 내걸었다.[111]
네 번째 트리플 쓰리를 향해 적극적으로 도루를 해 나가기로 결심했다.[112] 3월 25일 한신과의 개막전에서는 첫 타석에서 상대 선발 투수 후지나미 신타로로부터 몸에 맞는 공을 받았지만[113] 9회초에 카일 켈러로부터 동점 솔로 홈런을 터뜨려 개막전 사상 최대인 7점차 역전승에 기여했다.[114][115] 심각한 타격 부진에 시달리면서도 귀중한 한방을 날려[116][117] 팀의 교류전 우승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18] 7월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에는 상승세를 보이던 상태가 바뀌면서 부진을 더욱 극에 달하게 됐다. 야마다와 함께 전력에서 이탈 후 부진했던 선수들의 원 상태가 돌아오지 않게 되자, 후반기에서 6연패를 당했을 때는 ‘도와주세요’라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고 무라카미가 우승 후에 말했다.[119] 최종 성적은 OPS가 0.800 아래로 떨어졌고 홈런도 30개를 넘지 못하여 리그 최악의 기록에 해당되는 140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출루율은 주전으로 고정된 이후 최저 성적인 0.333에 그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즌 종반에 3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리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우승이 확정된 뒤에는 팀 전체가 부진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타격 부문 3관왕 및 56홈런을 기록하는 등 팀을 계속 이끌었던 무라카미 앞에서 감격에 북받쳤는지 끝내 눈물을 흘리는 모습[120]도 보였다.
4월 12일의 DeNA전에서 하반신 부상을 입으면서 다음날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됐고, 4월 28일에 선발로 복귀했다.[121][122] 5월 23일의 한신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6회 2사 1루 상황의 타석에서 무라카미 쇼키를 상대로 2점 홈런을 때려내며 역대 3번째가 되는 진구 구장에서의 통산 150홈런을 달성했다.[123] 7월 1일 히로시마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2019년 9월 22일 이후 처음으로 4번 타자로 출전[124]했지만 다음 날에 열린 히로시마전에서 오른발 부상을 당해 그 다음날인 3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됐다.[125] 8월 1일에는 1군에 복귀[126]하여 같은 달 13일 한신전(교세라 돔 오사카)에서는 5회 2사 2루 상황의 타석에서 이토 마사시를 상대로 2점 홈런을 때려내 히로사와 가쓰미(1985~1994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구단 기록인 10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127] 10월 4일 한신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1회 2사에 주자없는 상황의 타석에서 오타케 고타로를 상대로 이케야마 다카히로가 기록한 167홈런에 이은 역대 단독 2위의 진구 구장에서의 통산 156번째 홈런을 때려냈고[128] 5회에 동점 적시타, 4대 4 동점으로 맞은 9회 1사 1, 3루 타석에서 희생 플라이를 기록하여 시즌 최종전을 끝내기 승리로 마무리 지었다.[129] 시즌 성적은 2013년 이후 10년 만에 규정 타석에 도달하지 못했고[129] 10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31, 14홈런, 40타점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130]
2015년 10월 9일에는 제1회 WBSC 프리미어 12의 일본 대표팀 최종 로스터 28인 명단에 올랐다.[131] 최종적으로 팀은 3위로 끝나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7년 시즌 개막을 앞둔 3월에 개최된 제4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돼 이 대회에서는 주로 1번 타자 겸 지명 타자로서 출전했다. 2라운드 2차전 상대인 쿠바전에서 대회 사상 8번째가 되는 선두 타자 홈런을 기록하는 등[132] 한 경기에서 2개 홈런을 때려내는 등의 활약을 보였다.[133]
2019년 11월에 개최된 제2회 WBSC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결승전 상대인 대한민국전에서는 2회에 역전 3점 홈런을 기록[134]하여 일본 대표팀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2021년 6월 16일에 도쿄 올림픽 야구 일본 국가대표로 발탁[135]되면서 올림픽 본선에서는 전체 5경기에 1번 타자로 출전했다. 준결승전인 대한민국전에서 결승타를 포함한 팀내 최고 성적인 7타점을 기록하는 등[136] 일본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137]한 공로로 대회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138]
2023년 시즌 개막을 앞둔 3월에 개최된 제5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면서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17년 3월 7일, 도쿄 돔에서 열린 제4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1라운드 B조 경기인 일본 대 쿠바전에서 4회말 2사 2루 상황에 야마다가 좌익 방향으로 때려낸 타구를 맨 앞줄에 있던 남자 중학생이 글러브를 낀 손을 그라운드쪽으로 뻗어 포구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때 홈런인 것처럼 보였지만 비디오 판독에 의한 분석을 한 후 심판진의 판단에 따라 2루타로 판명났다.[주 4] 이 건을 둘러싸고 인터넷상에선 야마다가 실제로 하지 않은 발언이 루머로 확산되거나 포구한 사람이 특정돼 비난성 댓글이 오르는 등의 소동이 벌어졌다.[140] 경기 후 야마다는 ‘아무튼 이것도 야구니까 어쩔 수 없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서 타구를 날리고 싶다’라고 말했고 포구한 남자 중학생에 대해서는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야구를 싫어하지 않고 글러브를 가지고 응원하러 와줬으면 좋겠다”, “이것도 뭔가의 인연이고 장래에 프로 야구 선수가 돼서 같이 ‘그런 일이 있었군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추억에 남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나도 완벽한 홈런을 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141][142]
고교 통산 31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등 프로 입단 전부터 장타력은 높이 평가되고 있어[144] 고교 시절 스윙 속도는 고교 선배였던 T-오카다(오릭스)를 웃도는 154km/h를 기록하고 있다.[144]
스피드와 파워를 겸비한 최고의 우타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작 야마다는 “나는 홈런 타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145]
스윙을 하는 빈도가 매우 낮은 타자이며, 2014년의 스윙률은 38.8%로 일본 프로 야구에서 규정 타석에 도달한 전체 58명의 타자 중 7번째로 적었고 2016년 5월 종료 시점에서는 36.6%를 나타내며 규정 타석에 도달한 전체 63명의 타자 중 세 번째이자 센트럴 리그에서는 최소였다.[146] 볼에 대한 스윙률은 2014년부터 24.9% → 23.3% → 17.6%로 변하고 있으며 일본 프로 야구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146] 모든 타석에서 차지하는 볼넷의 비율을 나타내는 BB%(Base on balls Percentage)도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146] 전체 타구에서 차지하는 뜬공의 비율은 2014년부터 49.0% → 54.8% → 58.1%로 변하고 있으며, 꾸준히 타구를 때려낼 수 있는 타자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원래 잡아 당길 정도로 타석에 남아 있으려는 경향이 강한 타자이지만 해마다 그 비율을 올리고 있다.[146]
팀 동료인 블라디미르 발렌틴은 대포라고 부르기에는 작은 야마다가 홈런을 양산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공을 멀리 날리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신체 사이즈가 아닌 공 아래를 때리는 것”, “백스핀을 쓰는 기술이 뛰어나고 그것은 타고난 재능이다[147]”라고 말했다. 브래드 엘드레드는 “야마다는 큰 몸을 이용해서 공을 멀리 날려보내는 유형이 아니라 스윙 속도를 이용해서 홈런을 때려내는 유형의 파워 히터”, “가장 큰 특징은 콤팩트하게 치는 가운데 엄청난 방망이 속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올바른 방망이 궤도 안에서 공을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선구안도 좋기 때문에 공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분석했다.[147]
2018년 정규 시즌에서 기록했던 홈런의 평균 비거리는 119.7m이며, 20개 이상을 기록한 센트럴 리그 일본인 선수 중에선 최장 기록이다. 2015년도부터 2018년도까지의 비거리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148] 2018년 시점에서 메이지 진구 야구장은 일본 프로 야구단의 홈구장으로서는 좁은 부류이며 타 구장에서는 외야 뜬공이 되는 타구가 홈런일 수도 있지만 2018년에는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 한정된 평균 거리도 121.7m를 기록했으며 야구장 환경에 도움을 받은 홈런은 얼마되지 않았다.[148]
인코스의 공 다루는 솜씨가 능숙한 편이다.[149] 더욱이 그러한 상황에서 결과를 내는 승부에 강한 타자이다.[150]
수많은 타이틀을 차지한 경력이 있는 타자이다. 2014년에는 최다 안타(193개), 베스트 나인을 수상했고[151] 그 외에도 최다 멀티 안타(59개), 최다 맹타상(20회), 투 스트라이크 이후의 최고 타율(0.292), 우완 투수를 상대로 한 최고 타율(.343)을 기록했다.[152]
2015년에는 도루 성공률 89.5%를 남겨 도루수 및 도루 성공률의 높이에 따라 리그 평균에 비해 4.2점의 플러스를 나타내고 있으며 베이스 러닝은 리그 평균에 비해 8점분의 플러스를 기록하는 등[153] 탁월한 기술을 보여 BsR(주루에 의한 득점 공헌도)이 양대 리그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남겼다.[154] 도루든 베이스 러닝이든 득점 공헌도가 높다.[153]
50m 달리기는 5.67초[155]를 기록해 중학교 시절에는 100m 달리기에서 11초 5를 기록했다.[156] 당시 야쿠르트 코치를 역임했던 후쿠치 가즈키는 야마다에 대해 “단순하게 스피드라는 면에서 말하자면 팀에서는 제일 빠르다. 나의 현역 때보다 단연 빠르다”라고 말했다.[157]
2020년까지 팀 동료로 활약했던 우에다 쓰요시에 의하면 야마다는 ‘달릴 수 있는 용기’와 상대 배터리의 심리를 읽는 것에 능숙하다고 말했다.[158] 야마다와 상대한 투수에 의하면 출루해도 우위는 크지 않고 달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초구에 스타트를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159] 또한 슬라이딩 기술에도 정평이 나있다.[160]
타 구단의 베테랑 스카우트에 의하면 ‘타격이나 주루에 관해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쉽게도 수비가 어정쩡해서 2순위나 3순위로 붙잡을 수만 있다면’ 정도의 평가를 내렸다.[161] 그러나 프로 입단 후에는 미국 언론에서 칭찬받은 적도 있다.[162]
2013년 초반까지 유격수로서 수비면에서의 송구가 불안정하다는 지적을 받아 그해 5월 경 1군에 승격한 이후에는 2루에 거의 전념했다.[163] 2015년에는 2루수로서 리그 2위에 해당되는 수비율(0.989)을 기록한 것 외[164]에도 UZR에서 평균을 크게 웃도는 17.7을 기록했다.[165] 2017년에 DELTA사에서 시행한 FIELDING AWARDS 평가에서는 1·2루 사이의 타구에 강한 반면 2루수와 유격수 사이의 타구에 약하다는 분석이 나왔다.[166]
2018년도에는 UZR에서 1위를 차지한 기쿠치 료스케와 근소한 차이를 냈지만 FIELDING AWARDS에서는 선두와 근소한 차이인 2위를 나타냈고 다른 평가법에서는 12개 구단 중에서 1위를 나타냈다.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2루 쪽 땅볼 처리에 강한 경향이 나오고 있어서 수비 범위에서는 전체적으로 1위를 기록했다.[167]
그 외에 국가 대표(사무라이 재팬)로 발탁할 당시에는 타 선수와 걸맞게 1루수·3루수로서의 출전도 있었다. 멀리 던지기는 110미터를 기록했다.[168][169]
통산 100홈런 : 2016년 7월 10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15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7회말에 오카다 도시야로부터 좌중간에 2점 홈런 ※역대 277번째, 야쿠르트 구단 역사상 최연소가 되는 23세 11개월에서의 기록 달성
통산 150홈런 : 2018년 6월 30일, 대 한신 타이거스 8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7회말에 마르코스 마테오로부터 중월 2점 홈런 ※역대 168번째, 야쿠르트 구단 역사상 최연소가 되는 25세 11개월에서의 기록 달성
통산 1000안타 : 2019년 6월 30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1차전(아키타 현립 야구장), 1회말에 C. C. 메르세데스로부터 중전 안타 ※역대 300번째, 야쿠르트 구단 역사상 최연소가 되는 26세 11개월에서의 기록 달성[200]
통산 200홈런 : 2019년 9월 4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2차전, 9회말에 헤로니모 프란수아로부터 끝내기 만루 홈런 ※역대 106번째, 야쿠르트 구단 역사상 최연소 기록
통산 1000경기 출장 : 2020년 8월 23일, 대 한신 타이거스 1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2번·2루수로 선발 출장 ※역대 507번째[201]
통산 250홈런 : 2022년 4월 2일, 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2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6회말에 오누키 신이치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 ※역대 66번째, 야쿠르트 구단 역사상 최연소인 29세 8개월에서의 기록 달성, 20대에서의 달성은 역대 13번째[202][203]
통산 1000삼진 : 2022년 8월 2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14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3회말에 야나기 유야로부터 헛스윙 삼진 ※역대 75번째[204]
일본인 우타자 시즌 193안타 : 2014년 ※일본 프로 야구 기록(1950년에 후지무라 후미오(191안타) 이래 64년 만의 기록 경신)
4타수 연속 홈런 : 2015년 8월 21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0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네 번째 타석에서 볼넷 1개를 사이에 두면서 8월 22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1차전(메이지 진구 야구장) 네 번째 타석에서 달성 ※역대 19명째(20번째), 역대 2위 타이 기록[211]
↑구단에서는 1957년의 사토 다카오(고쿠테쓰) 이래가 되는 58년 만의 일본인 타자 홈런왕이며 야쿠르트 구단으로서는 사상 최초이다. 시즌 38홈런에서의 일본인 타자 홈런왕은 구단 신기록이다. 동시에 이케야마 다카히로가 기록한 일본인 우타자 시즌 홈런(34홈런) 구단 기록도 26년 만에 경신했다.
↑경기를 아우르는 기록도 포함하면 일본 시리즈 3타석 연속 홈런은 1970년에 나가시마 시게오(요미우리) 이래 45년 만에 두 번째이다.[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