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山地元治 | |
![]() 1896년경의 야마지 모토하루 | |
별명 | 애꾸눈 장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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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도사번 |
사망지 | 야마구치현 호후시 |
복무 | 일본 제국 육군 |
복무기간 | 1871 - 1897 |
최종계급 | 육군 중장 |
지휘 | 일본 제국 육군 |
주요 참전 | 보신 전쟁 청일 전쟁 |
야마지 모토하루(山地元治, 1841년 9월 10일 - 1897년 10월 3일)는 도사번의 번사, 신충대원,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이었다.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이었으며, 자작의 작위를 받았다. 아명은 주시치(忠七).
도사번 번사로 산치 모토히사의 장남으로 고치성하 마을 고다사카(小高坂) 에치젠마치에서 태어났다. 번주 소성(小姓) 일을 하였고, 아시가루 대장을 거쳐 1867년 보병 소대 사령관을 맡는다. 도바·후시미 전투에서는 독단으로 새 정부에 가담하여 막부 측을 공격했고, 보신 전쟁에서는 신충대 7번 대장, 호첩대장으로 동북 각지를 전전했다. 메이지 원년 1868년에는 대대장이 되었고, 이듬해 전공으로 상전록 150석을 하사받았다.
1871년, 왕실호위병(御親兵)으로 올라와 육군 중령으로 승진했다. 정한론 분쟁으로 이타가키 다이스케와 고토 쇼지로 등 토사 출신과 함께 하야한다. 귀향한 후는 이타가키 등과 함께 자유 민권 운동에 정진하자고 맹약을 맺었지만, 향후 방침을 놓고 이타가키와 갈등을 일으켜 육군에 복귀했다.
근위 6번 대대장 등을 거쳐서 1877년 3월부터 10월까지 보병 제4연대장으로 세이난 전쟁에 출정하여 유격 제3여단 참모장으로 부상을 당한다. 이후 보병 제3연대장과 보병 제12연대장 등을 거치면서 1881년 2월에는 육군 소장으로 구마모토 지방을 수비했던 군대 사령관을 지냈다.
오사카 지방을 수비했던 군대 사령관, 보병 제2여단장, 그리고 구마모토 지방을 수비했던 군대 사령관을 역임하고 1886년 12월 육군 중장으로 승진한다. 1887년 5월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제6사단장을 거쳐서 제1사단장으로 청일 전쟁에 출정하여 진저우나 뤼순, 전장대 등을 공략했다. 1895년 8월, 자작을 제수받고, 서부도독을 지냈지만, 야마구치현 호후시 미타지리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