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공방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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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에 대한 유다의 반란 (601–587 BC)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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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유다 | 신바빌로니아 제국 | ||||||
지휘관 | |||||||
여호야킴 † 여고니아 | 네부카드네자르 2세 | ||||||
병력 | |||||||
보다 적은 수 | 불명 | ||||||
피해 규모 | |||||||
많은 이들이 죽고, 다른 이들은 포로로 잡힘 | 불명 |
예루살렘 공방전(597 BC)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당시 유다 왕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을 포위한 군사 작전이다. 도시가 항복하면서, 유다의 왕 여고니아가 바빌로니아로 끌려가고, 바빌로니아가 임명한 그의 숙부 시드키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이 공방전은 히브리어 성경(2 Kings 24:10–16)과 바빌로니아 네부카드네자르 연대기에 기록되었다.
BC 601년, 네부카드네자르는 이집트를 점령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큰 손실로 격퇴를 당했다. 유다의 왕 여호야킴은 예언자 예레미야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친이집트적인 입장을 취하여 바빌로니아 통치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킬 기회를 잡았다.[1][2][3] 여호야킴은 불명확한 이유로 죽었고, 그의 어린 아들 여고니아가 뒤를 이었다.[4][5]
바빌로니아인들은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BC 597년 3월 예루살렘은 항복했다. 여고니아와 그의 궁중과 다른 유명한 시민들과 장인들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갔다.[6] 이 사건은 바빌론 유수와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여고니아의 숙부 시드기야가 유다의 봉신왕으로 임용되었다.
10년 후, 시드기야는 바빌로니아인들을 상대로 네부카드네자르에게 무참히 짓밟히게 되는 또 다른 반란을 일으켰다.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에 대한 2차 공성전은 도시와 제1성전의 파괴와 유다 왕국을 멸망을 가져왔다.[1]
1956년 도널드 와이즈먼에 의해 출판된 바빌로니아 연대기는 네부카드네자르는 BC 597년 3월 16일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정복했다고 주장한다.[7] 와이즈먼의 출판 전에, 에드윈 R. 틸레는 성경 본문으로부터 네부카드네자르의 첫 예루살렘의 함락된 것이 기원전 597년 봄이라고 판단했지만,[8] 윌리엄 F. 올브라이트를 포함한 다른 학자들은 더 자주 BC 598년에 사건 연대를 추정했다.[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