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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프린스 스미스 Oliver Prince Smith | |
출생지 | 미국 텍사스주 메나드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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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 | 캘리포니아주 로스알토스 |
복무 | 미국 해병대 |
복무기간 | 1917년 ~ 1955년 |
근무 | 제6해병연대, 1대대 제5해병연대 제1해병사단 해병대 학교 해병대 부사령관 캠프 펜들턴 대서양 함대 해병군 |
최종계급 | 대장 |
주요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
서훈 | 수훈십자장 해군 수훈십자장 육군 수훈십자장 은성 훈장 훈공장 (2) 동성 훈장 항공 훈장 |
올리버 프린스 스미스(Oliver Prince Smith, 1893년 10월 26일 ~ 1977년 12월 25일)는 미국 해병대의 4성 장군이다.
한국 전쟁 당시 인천 상륙 작전과 장진호 전투에서 1 해병 사단을 지휘했던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다.
1893년 10월 26일 텍사스주에서 태어났으며 북부 캘리포니아 주에서 자랐고 버클리에서 원예와 관련된 학문을 전공하였다. 1917년 해병 소위로 임관하여 프랑스 육군대학 수료하였다.
2차 세계대전때는 뉴 브리튼, 팔라우, 오키나와 전투에 참가하였다. 1950년 7월 25일에 1 해병 사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북진을 하게 되었을 때 만약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후퇴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진격 속도를 늦추었다. 그 결과 올리버 P. 스미스의 판단은 옳았고 그의 이러한 판단 덕분에 대한민국 국군과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장진호 전투에서는 장진호 부근 하갈우리에 야전 비행장을 설치하여 부상자, 보급품, 및 보충병을 후송시켜 제1 해병 사단의 전멸을 방지하였다. 장진호 전투 당시 55세였다.
그가 지휘한 1 해병 사단은 9 군단에 두 달하고 보름동안 배치되어 있었고, 1952년 3월까지는 10 군단에 소속되어 있었고, 제10군단 지휘관인 알몬드 소장과 사이가 극히 안 좋았다고 알려져 있다. 1953년 7월 중장으로 진급하였고 1955년 9월 1일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1977년 12월 25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알토스에서 8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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