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프 라와
Yusof Raw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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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의 총재 | |
임기 | 1983년 ~ 1989년 |
전임 | 아스리 무다 |
후임 | 파질 누르 |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의 종교적 지도자 | |
임기 | 1987년 ~ 1995년 |
전임 | 신설 |
후임 | 닉 아지즈 닉 맛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22년 5월 8일 | (102세)
출생지 | 풀라우피낭 주 르부흐아체흐 |
사망일 | 2000년 4월 28일 | (수식 오류: 알 수 없는 "{" 구두점 문자입니다.세)
사망지 | 풀라우피낭 주 |
정당 |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 |
배우자 | 칼솜 알리 |
자녀 | 무자히드 유소프 라와 |
종교 | 이슬람교 |
유소프 라와(말레이어: Yusof Rawa)는 말레이시아의 무슬림 정치인이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의 총재 및 국회의원직을 겸임했다. 유수프(Yusuf)라고도 하나, 원래의 이름은 유소프이다.[1]
풀라우피낭의 르부흐아체흐(Lebuh Acheh)에서 태어났다. 1951년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에 가입했으며, 1969년 총선 때 코타스타르슬란탄 지역의 의원이던 마하티르 모하마드를 몰아내고 승리했다.[1][2] 마하티르는 훗날 총리가 된다. PAS가 국민전선(BN) 연정의 일원이었던 1970년대, 그는 차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 터키, 이란의 말레이시아 대사를 지냈다.[1]
PAS 지도부가 위기를 맞았던 1983년, 그는 아무런 반대 없이 PAS의 총재로 선출되었다.[3] 학자(ulama/alim)파로 간주되지 않던 아스리 무다의 후계자로서, 그의 승리는 학자파의 승리로 간주되었다.[4] 아스리의 지도력은 PAS에게 있어 말레이 민족주의에 대한 관점을 좌우하는데 크게 주목되었다. 국민전선 연정에 가입하는 조치와, 종교적 정책논단에서 벗어나는 조치는 당의 지도력을 약화시켰다.[5]
유수프는 당 내에서 학자파 지도자였던 닉 아지즈 닉 맛, 압둘 하디 아왕 등과 함께[6] 학자파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했다.[7] 그의 지도력은 분명한 이슬람주의적 성향을 보였는데,[8] 먼저 '이슬람 국가'를 당의 강령으로 내세우는 가 하면, 국회의 권한을 "학자파 국회"의 감독으로 하는 정책을 제안했다.[6] 당의 정책을 말레이 민족주의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당 내에 중요한 개편을 단행했다. 당에 "종교적 지도자"라는 직책을 만들었으며, 1987년 그는 초대 종교적 지도자로 취임했다.[6] 그의 지도력은 "맹렬하고 노골적"으로 묘사되었다.[6] 1989년 건강상 문제로 총재직을 사임하고,[9] 부총재였던 파질 누르에게 넘겼다.[10] 파질은 이후 당을 중도적이고 온건한 길로 이끌었다.[11]
2000년 4월 28일 피낭에서 사망했다.[1] 아들 무자히드 유소프 라와는 2008년 국회의원이 되었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