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KRA의 원조 조인식 석상의 콜터 단장과 백두진 국무총리 (1953년) | |
원어 명칭 | 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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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 UNKRA |
결성 | 1950년 7월 |
해산 | 1959년 |
유형 | 국제 비정부 기구 |
목적 | 6.25 전쟁 피해 복구 지원 및 기반 구축 |
공식 언어 | 영어 |
유엔 한국 재건단(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UNKRA))은 1950년 12월 1일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의 재건을 위해 설립된 유엔 기구로서 원조자금을 관리하였고, 1953년에는 수리조합연합회, UNKRA, UN군사정부 간에 "식량증산 및 수리시설 복구를 위한 원조협정을 체결하고 수리조합 기자재를 지원하였으며, 1955년에 주한 미군 경제 조정관실로 업무를 이관하면서 폐지되었다.
1950년 7월에 UNKRA의 전신인 한국 민간구호원조대(영어: Civilian Relief in Korea (CRIK))가 설럽되었다. 10월에 중국인민지원군이 전쟁에 끼어들면서 재건 계획을 당장 시행하기 곤란해졌다.
12월 1일, 유엔 총회에서 발효한 결의 제410호(†(A/RES/410))[1]에 따라 설립되었다.
1951년 2월부터 활동을 개시하였으나, 당시의 모든 항구와 운송 시설은 총동원령에 따라 운영되고 있던 시기여서, UNKRA의 임무는 민간에 대한 긴급 부호로 제한되었다. 휴전이 체결되고 나서야 본격적인 원조 임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유엔 회원국으로부터 7,000만 미국 달러 정도의 원조자금을 조달받아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3년 휴전 이후 재건 사업이 시작되어 피난민과 집 없는 사람들을 구호하는 일에 주력했다. 거의 150,000,000 미국 달러가 이 계획에 소요되었으며, 기금의 대부분은 한국의 기부자, 미국, 또 멕시코와 같은 개발 도상국들도 기여했다. 이 사업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1958년에 끝났다.
1958년 6월까지 원조 활동이 끝날 때까지 총 1억 2,208만 4천 달러 가량의 지원 비용을 소비하였다. UNKRA는 1959년 운영을 멈추고 이듬해 1960년 해산하였다.[2]
UNKRA의 영향으로 탄광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인천판유리 공장이 1956년 2월 14일, 문경시멘트공장이 1957년 9월 26일에 설립되고, 국립의료원이 1958년 11월에 개원하였다. 문경시멘트공장은 이후 쌍용양회에서 사들여 "쌍용양회 문경공장[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으로 개명되었고 2018년 5월까지 운영되었다.[3]
Chief of Mission→임무장
아래의 목록은 1955년 6월 30일 당시의 기준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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