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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친왕 혁광

애신각라 혁광(愛新覺羅奕劻, 만주어: 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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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sin Gioro I Kuwang), 1838년 11월 16일~ 1917년 1월 28일)은 청 제국경밀친왕(慶密親王)으로 황족이다. 건륭제의 17서자였던 애신각라 영린(愛新覺羅永璘)의 손자이며 애신각라 면성(愛新覺羅綿性)의 아들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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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경친왕(慶親王)에 봉해졌다. 의화단 사건 때는 멸양 척화론을 주장하였으나,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한 뒤에 반의화단파가 득세하자 이홍장(李鴻章)과 함께 의화 전권대사에 임명되어, 1901년 11개국과 신축조약(辛丑條約)을 체결하였다. 그 해 독판정무처 대신에 임명되어 변법유신을 진행하고 1903년 3월 수석군기대신(首席軍機大臣)이 되었다. 1911년 군기처와 구내각이 폐지되고 신내각관제(新內閣官制)가 발포(發布)되자, 황제를 보필하고 국무의 책임을 지는 총리대신에 임명되었으나 신해혁명이 발생하면서 총리직을 사퇴했다. 1916년 병사하였다.

전임
서태후
(족척 족형
선황 함풍제
제1측실)
청 덕종 광서제의 1차 섭정 겸 대리청정
1899년 1월 1일 ~ 1899년 3월 18일
후임
보국공 푸쥔
(족척 족질
이혁단군왕의 장남)
전임
서태후
(족척 족형
선황 함풍제
제1측실)
청 덕종 광서제의 2차 섭정 겸 대리청정
1900년 10월 1일 ~ 1908년 11월 14일
후임

(광서제 붕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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