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조(중국어 정체자: 李鴻藻, 병음: Li Hongzao 리홍자오[*], 1820년 - 1897년)는 청나라 말기의 정치가이다. 동치제의 황사이다. 직례성 고양 출신으로 자는 난손(蘭孫)이다.
1844년에 거인, 1852년에 진사가 되었고, 한림원 서길사로 선정되어 편수와 하남학정을 역임했다.
1861년, 함풍제의 황태자 재순(이후 동치제)이 학문을 시작할 연령이 되자 대학사 팽온장의 추천으로 제사(帝師)가 되었다. 1865년에 동치제가 즉위하자 내각대학사 · 군기대신이 되었고, 1872년에 공부상서가 되었다. 1874년 10월 동치제의 병이 깊어지자, 황제를 대신해 상소에 비평을 했다.
동치제의 뒤를 이은 광서제의 치세에서도 중용되어 예부상서 ·병부상서 · 이조상서를 역임했고, 옹동화와 함께 광서제를 지원했다. 이홍장의 친족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혈연관계가 아닌 청불 전쟁과 청일 전쟁에서 주전론을 주창하는 등 이홍장과는 정적이었다.
1894년, 청일 전쟁이 발발하자 더 큰 의무를 부여받았지만, 1897년 세상을 떠났다.[1]
사후 태자태부(太子太傅)와 문정(文正)의 시호를 주어졌다.
베이징 사범대학의 학장을 지낸 이석증(李石曾)이 그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