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G7 정상회의(5th G7 Summit)는 1979년 6월 28일부터 6월 29일에 걸쳐 일본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개최되었다.[1]
기존의 선진공업국 7개국이 정식 회원국이었으며 유럽 위원회 의장은 국가는 아니나 준회원 자격으로 3회 정상회의부터 참가해 왔다.[2]
다음은 제5회 주요선진국 정상회의에 참가한 회원국과 대표의 목록이다. 영국의 마가릿 대처는 처음으로 참석했으며 캐나다 총리 조 클라크와 일본 내각총리대신 오히라 마사요시는 처음이자 마지막 참가였다.[3]
주요 G7 회원국 개최국과 개최국 수장은 굵은 글씨로 표시했다. | |||
회원국 | 대표 |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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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 조 클라크[1] | 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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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1] |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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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 헬무트 슈미트[1] | 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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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 줄리오 안드레오티[1] | 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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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오히라 마사요시[1] | 내각총리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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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 마거릿 대처[1] | 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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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지미 카터[1] |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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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위원회 | 로이 젱킨스[4] | 의장 |
1979년 1월 4일 일본 아사히 신문은 일본 정부가 5차 회의 당사국에 전년 12월 말 초청장을 보냈으며 회담은 6월 24일 ~ 25일에 걸쳐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내각총리대신 오히라는 오스트레일리아를 G7 회의에 옵서버로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5] 이후 일본정부는 3월 29일 회의일자가 6월 28 ~ 29일로 최종 결정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6]
회의를 앞두고 정상회의 개최에 반대하는 좌익 과격파들의 시위가 도쿄에서 일어났다.[7][8]
6월 27일 논의 안건에 대한 정상간 사전조정이 있었다. 6월 28일 오전 9시 30분 회의가 개막되었으며 다음날 29일 오후까지 네 차례 회의를 가진 뒤 도쿄 선언이 발표되었다.[9]
중동권의 혼란으로 석유가격이 상승하였기 때문에 주요 선진국들은 여기에 대응할 공동행동계획을 채택하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10][11] 서방 주요국은 당시 석유가격을 올리던 OPEC에 대항하여 각각의 해법을 사전 제시했는데 미국·일본·프랑스는 소비국끼리 동맹을 결성하자고 주장했으나[12] 서독은 여기에 반대하는 등 입장차이를 보였다.[13] 또한 언론은 대일 무역적자가 심하던 미국과 유럽이 일본에 수출량을 줄이거나 일본 국내시장을 개방하라는 요구를 할 것으로 예측하였다.[14]
본회의에서 논의된 주요 의제는 아래와 같다.[9]
회의 결과 상기 주요 의제 7항목에 대한 합의사항을 도쿄 선언으로 발표하였다. 선언문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15]
소식통들은 석유수출국기구간 각료회의에서 석유가격을 재인상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응하여 선진국 정상간의 단결력이 발휘되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석유수입 억제 기한과 기준연도, 규제 참여방법에 대하여 이견이 많아 결국 자국 이기주의를 보여준 결과였다는 비판도 나왔다.[16]
이외에 각국 수뇌가 합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