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록 | |
조명록 (왼쪽)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함경북도 연사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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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시 |
복무 | 조선인민군 |
복무기간 | 1952년 ~ 2010년 |
근무 | 조선인민군 |
최종계급 | 조선인민군 차수 |
지휘 | 공군사령부 총참모장 공군 반항공사령부 사령관 공군사령관 |
기타 이력 | 최고인민회의 제7기 대의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조선로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
조명록(趙明祿, 1928년 7월 12일 ~ 2010년 11월 6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정치인, 외교관으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인민군 차수였다. 2000년 고위급 군인으로는 최초로 미국을 방문하여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만나 회담하기도 했다.
소비에트 연방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1952년 귀국 후 조선인민군에 입대, 인민군 공군에서 복무하였다. 공군 장교로 조종사를 지냈으며, 연대장·사단장 등으로 고속 승진을 했다. 1977년 중장으로 진급, 공군사령관에 임명되어 1995년까지 인민군 공군을 지휘했다.
1980년 10월 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 되었으며, 1982년 최고인민회의 제7기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85년 상장으로 진급했고, 1992년 4월 김정일이 인사권을 행사할 때 대장으로 진급했다. 1995년 차수로 진급하고 인민무력부장 겸 총정치국장 오진우가 사망하자 총정치국장으로 발탁되었다.
2000년 10월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전격 방문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고 '북미 공동커뮤니케'를 함께 발표하여 냉각된 조선-미국 관계의 새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하였으며, 2006년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2009년 4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재선되었다.[1]
2010년 11월 6일 10시 30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나이는 83세였다.[2]
조선인민군 공군사령관 1977년 ~ 1995년 |
전임 오진우 |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1995년 2월 25일 ~ 2010년 11월 6일 |
후임 최룡해 |
전임 김정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8년 9월 ~ 2010년 11월 |
후임 김정은 |
전임 최광 |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1997년 2월 21일 ~ 1998년 9월 |
후임 리용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