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보보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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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독립전쟁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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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그란콜롬비아 혁명군 및 해외 자원병들 | 스페인 제국 | ||||||
지휘관 | |||||||
시몬 볼리바르 | 미겔 데 라 토레 | ||||||
병력 | |||||||
6500-8000명 보병 4000명 (1천가량의 영국인[1]) 기병 2500명 |
4000-5000명 (기병이 전투 불참) | ||||||
피해 규모 | |||||||
200명 사망 (신뢰하기 어려움) | 2908명 사상 혹은 포로 |
카라보보 전투(스페인어: Batalla de Carabobo 바타야 데 카라보보[*], -戰鬪)는 베네수엘라 독립전쟁에서 1821년 6월 24일,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이끄는 그란콜롬비아군이 스페인 제국의 미겔 데 라 토레 장군이 이끄는 반혁명군을 맞아 싸워서 크게 이긴 전투이다.
반혁명군은 베네수엘라 지역의 발렌시아에서 푸에르토카베요에 이르는 가도를 점령하였다. 6500명가량의 볼리바르 군대가 반혁명군과 맞닥드렸을 때, 볼리바르는 군대를 반으로 나누어 한 무리가 지형이 거친 곳을 통과해 측면 작전을 펼치도록 하였다. 데 라 토레도 군세를 반으로 나누어 한 무리를 측면공격에 대응하도록 하였다. 반혁명군은 머스킷 총을 쏘면서 혁명군의 공격을 한동안 저지하였고, 혁명군의 보병은 후퇴하였다. 하지만 영국인 부대의 대원들은 격렬하게 싸워 언덕 거점을 확보했는데 그 와중에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였다.(전체 혁명군 사상자의 절반가량)
결국에는 혁명군이 측면 공격으로 반혁명군의 전열을 무너뜨렸고, 데 라 토레 군대의 후방을 향해 진군해 갔다. 스페인 보병은 사각 대형을 만들어 끝까지 싸웠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못했고, 최종적인 혁명군의 승리로 전투는 끝이 났다. 이 전투 이후 이어지는 마라카이보 전투 등을 통해 베네수엘라 지역의 해방이 공고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