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친부(중국어: 科爾沁部 Kē'ěrqìn bù[*], 만주어: ᠬᠤᠷᠴᠢᠨ, 몽골어: Хорчин Khorchin)는 네이멍구의 옛 부명으로 아루코르친부(阿魯科爾沁部)와 구별하기 위해 넨코르친부(嫩科爾沁部)라고도 하며, 후금누르하치와 최초로 동맹을 맺은 몽골 부족이다.
부족은 이주를 거쳐 후금 천총 연간, 지금의 네이멍구자치구 동부의 퉁랴오시, 싱안맹을 중심으로 유목지를 정하고, 철리목에서 회맹을 하였다. 1990년, 네이멍구자치구의 2백여 만명의 몽골인구의 약 70%를 코르친부와 아루코르친부의 후손들이 차지하고 있다.
코르친부는 칭기즈칸의 동생 주치 카사르와 그 후예들이 속한 부하들에서 비롯되었다. 1491년, 코르친부는 다얀 칸의 동몽골 통일작전에 참전했다. 하사르 후왕의 치하에, 코르친부는 1만 가구로 편성되어, 아바가코르친(阿巴噶科爾沁)이라는 존칭으로 불렸다.
명가정 초기, 코르친 수령인 퀴멍크타스하라(奎蒙克塔斯哈喇)가 부중을 이끌고 어넌강, 어르구나강 유역에서 넨강 유역으로 이동했다. 자라이트, 두르보트, 궈르로스부와 시보, 과르차, 사하르차 등을 점령하여 넨코르친부를 형성하였고, 후대에선 통칭 코르친부로 불린다. 이 부는 명나라 말기에 요동 밖 지역 강력한 몽골 부족 중 하나가 된다.
차하르부투만 칸이 집권하던 시기, 코르친부는 차하르부를 따랐다. 현대 연구자들은 초기 이들이 투만 칸과 "일시적인 군사 연합에 불과했고, 심지어 투만 칸이 군사를 동원해 코르친부를 공격한 적도 있다. 1575년, 투만 칸과 코르친의 관계가 현저이 완화되었다."고 주장했다. 1583년, 투만 칸은 코르친부 (내칼카)를 이끌고 "성유가 광녕, 요심, 개원, 철령을 약탈했다." 연구자들은 이때 이미 차하르부에 속한 것으로 보고있다. 만력 초년, 코르친부는 개원, 철령 부서쪽 외부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처치컨의 아들 옹궈다이, 저르드의 아들 투먼르 (청나라 조정 이투메이)가 코르친부의 수령이다. 그러는 동안 코르친부는 명나라와 시장을 나누었다. 1588년, 옹궈다이와 함께 명경 약탈에 나섰던 내칼카의 수장 놘투, 자루트부 이얼덩의 지역을 공격했다. 옹궈다이와 투먼르는 "혼동강으로 피난하라", 즉 연강과 혼동강이 합류하는 것 외에는 피한다라고 했다.
옹궈다이 등은 혼동강으로 피신한 뒤, 해서여진 북부지역을 장악해 여진 여러 부와 더욱 가깝게 지냈다. 건주여진의 누르하치가 떠오르자, 옹궈다이와 해서여진 부족연맹은 구륵산 전투에 참전해 패전했다. 1608년, 누르하치에게 다시 패배했다. 나중에는 누르하치와 가까이 지내게 된다. 옹궈다이가 죽은 후, 아들 아오바는 코르친부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천계 4년 (1624년), 차하르부 링단 칸과의 관계를 끊고, 부족민을 이끌고 누르하치에게 갔는데, 청 왕조 몽골 부족 중 가장 먼저 귀순한 사례이다.
옹궈다이의 부족 형제인 망구스, 밍안, 콩궈르 3형제때부터 청 황실과 끊임 없이 혼인을 맺으며 인척관계를 쌓았다. 누르하치, 홍타이지, 순치제의 여러 비들, 효단문황후, 효장문황후가 코르친부 출신이다. 청나라 말기 장령 셍게린친, 봉기군 수령 가다메이린 등이 몽골 코르친부 출신이다. 만주인이 티베트 불교를 알게 된 것도 몽골 코르친부와 관련이 있고, 이들도 거의 대대로 청나라 만주족 귀족과 통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