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출스 Claude Stanley Choules | |
1915년 14살의 클로드 출스 | |
출생지 | 잉글랜드 우스터셔주 퍼쇼어 |
---|---|
사망일 | 2011년 5월 5일 (110세) |
사망지 | 오스트레일리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퍼스 |
성별 | 남성 |
복무 |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
복무기간 | 1915-1926 1926-1956 |
근무 | 영국 해군 (1915-1926)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1926-1956) |
최종계급 | 고급하사관 |
지휘 | HMAS 루윈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서훈 | 영국 전쟁 훈장 오스트레일리아 방위장 해군 장기복무 및 우수근무장 100주년 훈장 |
클로드 스탠리 출스(영어: Claude Stanley Choules /ˈʃuːlz/;[1], 1901년 3월 3일 ~ 2011년 5월 5일)는 잉글랜드에서 태어나서 오스트레일리아 퍼스에서 근무한 군인이다. 그의 죽음 당시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1915년부터 1926년까지 영국 해군에서 복무했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이후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에서 1926년부터 1956년까지 고급하사관으로 복무했으며 귀화한 오스트레일리아인이었다.[2][3][4] 그는 1919년 대양함대 자침을 목격한 마지막 군인 목격자이자 양차 대전에서 모두 복무한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의 죽음 당시, 그는 세계에서 3번째로 나이가 많은 양차 대전 참전 용사였으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알려졌었다.[5][6] 그는 세계에서 7번째로 오래 산 사람이었다. 출스는 2010년 6월 21일 스탠리 루카스의 뒤를 이어서 영국에서 태어난 사람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되었다. 출스는 11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7] HMAS 출스 (L100)는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으며, 이 전함은 항해사의 이름을 따 붙여진 함명 중 두 번째 경우였다.
클로드 출스는 1901년 3월 3일 우스터셔주의 퍼쇼어에서 태어났으며,[8] 근처에 살던 와이레 피들에 의해 길러졌다. 해리와 마델린 사이의 아들이었던 클라우드는 7형제 중 한 명으로, 그의 형제자매 중 2명은 어린 나이에 죽었다. 더글라스, 레실, 필리스와 그웬돌린이 살아남은 형제자매였다.[9] 그의 어머니는 클로드가 5살일 때 집을 떠나 여배우로서 무대에 복귀했고, 그와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양육했다. 클로드의 누나 필리스는 삼촌과 함께 살았으며, 그웬돌린은 이모에게 입양되었다.[10] 클로드와 그의 형들은 퍼쇼어 국립소년학교에 들어갔지만, 1911년 더글러스와 레실은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다.[11]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클로드는 13살이었고. 가족들은 더글라스[12]와 레실[13][14][15]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두 형제는 제1오스트레일리아 황제군에 배속되어 갈리폴리 전역 때 안작 만에 상륙했다. 출스는 14살이 되던 해 학교를 떠날 수 있었으며 그는 나팔수로 육군에 입대 신청했으나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되었다.[16]
클로드의 아버지는 그에게 해군에 입대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고, 1915년 4월 14살의 나이에 그는 해상훈련선인 TS 머큐리에 승선하게 되었다.[17] 이 훈련선은 햄프셔 주 사우샘프턴 인근의 햄블 강에서 정박 중이었으며 HMS 가넷이라 알려진 HMS 프레지던트라 불리는 기숙선도 있었다.[18] 머큐리 선의 지휘관은 크리켓 선수였던 C. B. 프라이였고, 때로 출스는 머큐리의 댄싱 팀이 있는 네틀리 병원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19] 출스가 치른 시험은 그가 훈련선 HMS 임프레그너블의 상위 수업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이 훈련선은 플리머스의 데번포트 해군기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출스는 1916년 10월 그곳으로 전속되었고, 영국 해군 제국함대에 참가하기 직전의 마지막 훈련을 그곳에서 받았다.[20]
1917년 10월 20일 출스는 전함 HMS 리벤지 (06)에 승선했다. 이 전함은 오크니 제도에 위치한 스카파 유수에 정박한 제1소함대의 기함이었다. 출스는 독일 체펠린에 맞선 전투에 참여했고,[21] 1918년 11월 21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열흘 후 포스만에서 독일 제국해군이 항복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대양함대 자침을 목격하기도 했다.[22]
1926년, 다른 11명의 왕립해군과 함께 출스는 플린더스 해군 창고로 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런던에서 멜버른까지 6주 간 여행을 떠났으며, 이 여행에서 그의 부인이 될 에델 와일드구스를 만났다. 그녀는 빅토리아 리그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로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23] 출스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삶의 방식을 경험하고 이에 동의하게 되면서 영구적으로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으로 복무할 것을 결심한다.[24]
그는 1931년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에서 떠나는 것을 허락 받았지만, 1932년 예비군으로 남아 있다가 다시 군에 들어와 대잠전과 어뢰전 관련 고급하사관이 되었다.그는 잉글랜드를 떠난 이후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25]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출스는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에 위치한 프리맨틀 해군기지의 HMAS 루윈에서 어뢰 담당관으로 근무했다.[26]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서부를 담당하는 철거부 참모장으로 복무하기도 했다.[22] 그는 일본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침공할 경우 프리맨틀 항을 태업시키고 관련된 유류 저장고를 폭파시키는 업무를 맡았다.[26] 출스는 오스트레일리아 에스퍼런스에 설치된 독일 기뢰를 제거하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26]
출스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에 남았으며 1956년까지 해군 조선소 경비대에서 근무했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의 퇴역 나이는 50세였지만, 일반 병사들은 해군 조선소 경비대에서 55세까지 근무할 수 있었다.[27][28]
출스와 그의 아내 에델은 76년 간 부부로 있었으며, 에델은 9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7] 출스는 정전협정 기념식을 회피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전쟁을 찬미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29] 그의 자서전 The Last of the Last가 2009년 퍼스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으며,[30] 주석이 달린 편집본이 2010년 영국 독자들을 위해 출판되었다.
2009년 8월 6일, 거의 시력과 청력을 잃은 출스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건강했고, 여러 TV 인터뷰에 참석하기도 했다.[31] 2010년 4월 출스의 딸 다프네 출스에딘저는 출스의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의 인터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32] 그는 2011년 3월 110세의 생일을 맞았다.[33] 그는 여생을 퍼스 외곽의 살터 포인트에 있는 그레이스우드 호스텔에서 보냈다.
클로드 출스는 BBC 다큐멘터리인 더 라스트 토미 (2005)와 해리 패치 – 더 라스트 토미 (2009)에 등장했다. 그의 사후 오스트레일리아의 총리 줄리아 길라드는 "출스 씨와 그의 자손들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자유를 위해 희생했습니다."라고 말했다.[34]
2011년 5월 5일에 출스가 사망했다.[35] 그에게는 3명의 자녀와 11명의 손주, 그리고 22명의 증손주가 있었다.[27] 그의 장례식은 2011년 5월 20일 프리맨틀에서 해군 장례식으로 치러졌다. 그의 장례식에는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의 콜린 배넛과 에릭 리퍼, 그리고 연방 국방부 장관인 스티븐 스미스가 참석했다. 출스의 아들인 아드리안이 추도 연설을 했다.[36]
2011년 12월 13일 왕립 함대 조동사의 상륙함 RFA 라르그스 만이 HMAS 출스 (L100)으로 왕립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에게 인계되었다.[37] 상륙함이 클로드 출스의 이름을 따 명명된 이유는 그가 제1차 세계 대전의 참전용사 중 마지막 생존자였기 때문이었다. 이 명명은 해군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의 일부로써, 등록된 항해사들의 복무를 인정하는 것이며, 출스가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전함이 예전 영국 해군에서 활약했던 것도 기념하는 의미가 있다.[37][38]
출스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생존한 마지막 남성 참전 용사였고, 현역으로 복무한 마지막 참전 용사였다. 그의 죽음으로 플로렌스 그린만이 유일한 생존 참전용사가 되었다.[39]
2014년 4월 10일 퍼쇼어 의회는 출스의 이름을 따 거리를 지음으로써 그를 기리기로 했다.[40]
Mr Choules was informed by his 80-year-old daughter Anne Pow over the weekend that the death of 111-year-old Harry Patch, Britain's last soldier who fought in the Great War's infamous trenches, had made him the country's sole surviv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