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 |
---|---|
八公山 | |
최고점 | |
고도 | 1,193 m (3,914 ft) |
치수 | |
면적 | 100 |
지리 | |
위치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동구, 군위군 경상북도 영천시, 칠곡군, 경산시 |
부모 산맥 | 팔공산맥 |
팔공산(八公山)은 제23호 국립공원으로 대구광역시 동구와 군위군, 경상북도 경산시와 영천시 그리고 칠곡군에 넓게 걸쳐 있는 태백산맥 줄기의 산이다.[1] 1980년 5월 13일에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23년 12월 31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2]
삼국시대부터 신라인들이 "아버지의 산(부악, 父岳)" 또는 "중심이 되는 산(중악, 中岳)"으로 신성시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산이다.[3]
팔공산은 봉황의 모습으로 대구분지를 감싸는 대구의 진산(鎭山)이다. 최고봉인 비로봉(1,192m)이 봉황의 머리이고, 동봉(1,167m)과 서봉(1,150m)이 솟아오른 봉황의 날개라고 한다.[4] 동화사 자리가 봉황의 아기궁이라서, 겨울에도 오동나무 꽃이 필 정도로 따뜻하다.[5]
예로부터 불교 문화의 중심지여서 수많은 사찰들이 산재해있다. 대표적인 사찰로는 동화사, 은해사, 선본사, 송림사, 파계사, 부인사, 북지장사, 환성사, 거조사, 관암사, 관음사, 삼존석굴사(제2석굴암, 군위석굴암) 등이 있다.
대구분지는 과거에 습지와 호수가 대부분이어서 호수처럼 보였다고 한다.[6] 그래서 각종 새가 많이 살았는데, 특히 닭과 물닭 등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구의 예전 이름이 달구벌이 된 것이다.(아직도 지역 노인들은 병아리보고 달구새끼라고 한다.)[7]
팔공산도 예전에 조류인 꿩이 많이 살아서 "꿩산"이라고 했었다. 때문에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경덕왕은 팔공산이 감싸고 있는 지형인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를 한자로 "꿩 치(雉)"자를 써서 치수화라고 부르기도 했었다.[8]
꿩산이 통일신라 말 ~ 고려 초에 전국 지명이 한자어로 바뀌는 과정에서 "공산(公山)"이 되었다.(참고로 충청남도 공주의 공산(公山)은 곰산이 변해서 된 것이다.) 그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왕 견훤과 팔공산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이때 전사한 8명의 고려 장군을 기려, 이름을 다시 팔공산(八公山)으로 바꾸게 된다.[9]
대구광역시의 주요 관광지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2년 연속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대형 카페가 많고, 산채비빔밥, 팔공산 미나리삼겹살 등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봄꽃을 즐길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도 유명하다.[13]
동화사집단시설지구, 파계사집단시설지구, 갓바위집단시설지구, 팔공스카이라인, 동화사 자동차극장 등이 있다.
정식 명칭은 대구 팔공산 케이블카로 1985년 10월 18일 개통했으며 길이 1,192m이다. 2013년 이용객 수는 28.8만명이었다.
팔공산온천관광호텔, 제2석굴암온천호텔, 힐사이드관광호텔이 있다.
팔공산 캠핑장(동화사 탑골 야영장, 파계사 야영장, 도학동 야영장), 가산산성야영장 Archived 2023년 5월 19일 - 웨이백 머신, 성덕수련원, 팔공학생야영장이 있다.
팔공컨트리클럽이 있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 가산산성, 노태우 대통령 생가, 비로봉 제천단, 한티순교성지, 치산관광지 등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을 대신하여 대구 팔공산에서 대신 목숨을 잃은 신숭겸 장군의 유적지이다.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 노태우의 생가이다.
2.18 대구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졌으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체험교육을 할 수 있다. 어린이 안전 체험교육이 인기다.[14]
팔공산 순환도로가 있다.
6.25 및 월남참전 유공자 기념비가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팔공산은 신라 오악 중 부악(父岳) 또는 중악(中岳)으로서[15], 국가 차원에서 숭배되어 온 영산(靈山)이었다.[16]
2023년 6월 현재는 경상북도 군위군이지만, 그 해 7월 1일부터는 대구광역시 군위군이 된다. 군위는 왕건이 이 지역 군사들의 사열을 받았는데, 위세가 좋다 하여 지어진 지명이라고 한다. 또는, 이미 삼국시대에 신라장군 김유신이 지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23]
대구광역시 북구 무태는 왕건이 병사들에게 태만하지 말라고 하여 지어진 지명이다.[24]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은 왕건이 지나갈 때, 이 마을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다하여 지어진 지명이다.[25]
현재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과 서변동 일대이다. 동화천과 금호강이 만나는 지점을 말한다.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시내를 사이에 두고 화살을 쐈다. 화살이 내를 이뤘다해서 유래한 지명이다.[26]
신숭겸이 왕건과 옷을 바꿔 입는 묘책을 냈다고 해서 지어진 지명이다. 왕건이 후삼국 통일 후에, 신숭겸을 위한 사찰인 지묘사를 지어서 유래한 지명이다.[27]
고려군이 계속 밀려서 왕건은 죽을 위기에 몰리게 된다. 그러나 지묘한 계책을 낸 신숭겸과 장군들이 전사까지 하면서, 후백제군을 겨우 막아낸다. 여기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후, 왕건은 도망을 가게 된다.
왕건이 이곳을 지나가니 청년들은 없고, 아이와 노인 그리고 여자들 뿐이었다. 그러자 왕건이 얼마나 늙지 않는 동네이면 아이들 밖에 없냐고 해서 지은 지명이라고 한다.[28]
여기 정도 오니 왕건의 얼굴(얼굴 안)이 조금 풀렸다고(풀릴 해) 해서 지은 지명이다.[29]
왕건이 여기까지 도망을 오니, 마음이 안심되었다고 해서 지어진 지명이다.[30]
밤이 되어 왕건이 하늘을 쳐다보니 반달이 떠있어서 지어진 지명이다.[31]
은적사는 현재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에 있는 사찰이다. 은적사는 왕건이 조그만 굴에서 3일을 숨어 지냈다고 해서 지어진 지명이다.
안일사는 현재 대구광역시 비술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안일사는 은적사보다 더 골짜기여서, 편하게 쉬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전열을 가다듬은 견훤이 여기까지 병사를 보냈고, 절 위 500m 지점에 있는 왕굴로 피신하였다.[32]
팔공산은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형상이다. 팔공산의 중앙부는 산세가 좋은 편이며, 동화사가 있는 자리는 따뜻하고 바람을 막아준다.
동화사라는 이름 자체가 한 겨울 눈 속에서도 오동나무 꽃이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절의 위치가 봉황의 아기궁이라 하여 입구에 알 모양 조각이 있다.
반면 기도처인 팔공산 갓바위 유명한 관봉은 날개부분이라 경사가 심한 편이며 중앙부에서 능선을 타고 외곽인 관봉까지 올 경우 밧줄로 암벽을 타고 오는 등산로까지 있을 정도로 험하다.
팔공산을 구성하는 팔공산 화강암(Kgr)은 대구광역시 북부의 팔공산을 중심으로 북서-남동 방향의 장축을 가지고 타원체의 형태의 암주상 관입암체로 약 240 km2의 면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불국사 화강암으로 등방성(等方性)의 중립질 흑운모-각섬석 화강암이 우세하나, 섬록암, 각섬석 화강암, 석영몬조니암, 화강반암의 화성암류도 소규모 산출되며 석영, 사장석, 알카리 장석, 흑운모, 각섬석의 광물로 구성되어 있다.
팔공산 지역의 중력탐사 단면도에서 본 화강암은 최대 심도가 7 km와 5 km에 이르는 관입뿌리(feeders zone)를 가지고 있으며 최대 심도를 갖는 관입뿌리(feeder zone)는 현재 지표상에 노출된 화강암체의 중심으로부터 남서쪽에 위치한다. 팔공산 화강암의 전암 Sr-Rb 연대는 84±9 Ma (약 8400만 년 전)이고 흑운모와 알카리 장석에 대한 K-Ar 연대는 각각 71~72 Ma와 43~44 Ma이다.
본 화강암체의 후기 관입활동의 산물로서 화강암체 내와 혼펠스화된 퇴적암의 최외곽부에 열수광맥형 광산들이 산재해 있으며 이미 알려진 칠곡 광산 현재는 가행되는 않는 폐광산들이 다수 존재한다. 팔공산 화강암체는 경상 분지의 여러 지층을 관입하면서 주변에 쇄설성 퇴적암과의 접촉부에 다양한 형태의 접촉 변성대를 형성시켰다.[37]
팔공산 단층(八公山 斷層, Palgongsan Fault)은 대구광역시 북부의 팔공산 화강암체를 절단하며 서북서 방향으로 발달하는 주향 이동 단층으로 가음 단층계의 일부이다. 단층면은 서북서 방향의 주향에 북으로 고각 경사하는 양상을 보인다. 장기홍 외(1997)의 연구에서는 의성소분지와 밀양소분지의 경계를 이루는 서북서 방향 팔공산 단층의 운동사를 제안하였다. 이들에 의하면 팔공산 북쪽에 분포하는 후평동층, 점곡층과 남쪽에 분포하는 칠곡층, 신라 역암층, 학봉 현무암이 형성될 팔공산 단층이 퇴적동시성 단층으로 운동하였으며, 단층 휴지기에 함안층과 진동층이 퇴적되고 유천층군의 화성활동이 발생한 후에 약 5.5 km 수평변위를 보이는 좌수향 주향이동 운동이 발생하였음을 보고하였다. 특히, 여러 백악기 화성암체들이 팔공산 단층의 연장을 따라 분포하고 있음을 토대로 이들이 팔공산 단층을 분출통로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해석하였다. 팔공산 단층은 하산동층이 최대 5.5 km의 변위를 보이는 곳에서 가장 잘 관찰되며 동쪽으로는 경산시 하양읍에서 첨멸되나 서쪽의 첨멸 지점은 아직 불명이다.[38]
불국사 화강암류에 속하는 팔공산 화강암에 대해 최초로 얻어진 K-Ar 장석연령치는 73 Ma였고[39] 이후 측정된 Rb-Sr 전암 연령은 백악기 후기 상파뉴절에 해당하는 82 Ma이다. 팔공산 주향이동 단층의 운동이 팔공산 화강암 관입 직후에 끝났고 팔공산 화강암이 고결(固結)된 시기를 82 Ma로 본다면 캄파니아 전기에 팔공산 단층의 활동은 끝났다고 보게 되므로 팔공산 단층 발달사의 기간은 백악기 알비절(Albian) 초에서 상파뉴절(Campanian) 전기까지 30 Ma이다.[38]
디지털TV | ||||||
가상채널 | 방송국명 | 호출부호 | 물리채널 | 출력 | 가시청권 | |
---|---|---|---|---|---|---|
CH 6-1 | TBC DTV | HLDE-DTV | CH 15 | 2.5㎾ | 대구 일원, 경북 중남부 | |
CH 7-1 | KBS대구 2TV 디지털 | HLQH-DTV | CH 16 | |||
CH 9-1 | KBS대구 1TV 디지털 | HLKG-DTV | CH 14 | |||
CH 10-1 | EBS 1TV | HLQL-DTV | CH 18 | |||
CH 10-2 | EBS 2TV | |||||
CH 11-1 | 대구MBC DTV | HLCT-DTV | CH 17 | |||
UHDTV | ||||||
가상채널 | 방송국명 | 호출부호 | 물리채널 | 출력 | 가시청권 | |
CH 6-1 | TBC UHD TV | HLDE-DTV | CH 53 | 5㎾ | 대구 일원, 경북 중남부 | |
CH 7-1 | KBS대구 UHDTV2 | HLQH-DTV | CH 56 | |||
CH 9-1 | KBS대구 DTV1 | HLKG-DTV | CH 52 | |||
CH 11-1 | 대구MBC DTV | HLCT-DTV | CH 55 | |||
FM라디오 | ||||||
주파수 | 방송국명 | 호출부호 | 출력 | 가시청권 | ||
89.7MHz | KBS대구 음악FM | HLKG-FM | 5㎾ | 대구 일원, 경북 중남부 | ||
93.1MHz | CPBC대구가톨릭평화방송 | HLDK-FM | 3㎾ | |||
94.5MHz | BBS대구불교방송 | HLDI-FM | 3㎾ | |||
95.3MHz | 대구MBC FM4U | HLCT-FM | 5㎾ | |||
96.5MHz | 대구MBC 라디오 | HLCT-SFM | 5㎾ | |||
97.1MHz | 대구CBS 음악FM | HLKT-FM | 1㎾ | |||
99.3MHz | TBC Dream FM | HLDE-FM | 5㎾ | |||
101.3MHz | KBS대구 제1라디오 | HLKG-SFM | 5㎾ | |||
102.3MHz | KBS대구 제2라디오(HappyFM) | HLQH-SFM | 3㎾ | |||
103.1MHz | 대구CBS 라디오 | HLKT-SFM | 5㎾ | |||
103.9MHz | TBN대구교통방송 | HLDU-FM | 3㎾ | |||
105.1MHz | EBS FM | HLQL-FM | 3㎾ | |||
지상파DMB | ||||||
방송국명 | 채널목록 | 호출부호 | 채널(주파수) | 출력 | 가시청권 | |
myMBC (경북권) | myMBC TV | HLAW-TDMB | CH 7-A (175.280MHz) |
2㎾ | 대구 일원, 경북 중남부 | |
U-KBS | KBS STAR | HLKG-TDMB | CH 7B (177.008MHz) | |||
HD KBS STAR | ||||||
KBS HEART | ||||||
KBS MUSIC | ||||||
TBC | TBC u | HLDG-TDMB | CH 7C (178.736MHz) | |||
mYTN |
팔공산(1,192.3m)은 태백산맥의 보현산(普賢山, 1,124m)에서 서남쪽으로 연결된 산이다.
신라 때 부악 또는 중악이라 했으며, 중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전한다. 출처: 월간산(http://san.chosun.com)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東峰)과 서봉(西峰)이 양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으로 솟아 있다.
그 후 심지대사가 중창할 때 오동나무 꽃이 상서롭게 피어 있어 동화사라 고쳐 불렀다.
지금까지 대구가 아득한 옛날에는 땅이 아니라 거대한 호수였다는 것과, 1980-1990년대의 도시화 과정에서 대부분 매립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닭(鷄)에 연유하는 것일까. 경상도 방언에 닭을 상스럽게 이를 때 ‘달구새끼’라고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달구’의 뿌리에 닭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더 이어진다.
팔공산은 본명인 ‘꿩산’을 신라 경덕왕 대에 한자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공산’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는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의 행정구역이 ‘치수화(雉首火)’였던 것에서 기인한 설이다. 치(雉)는 꿩이고 수화(首火)는 ‘수풀’의 이두식 표기였다는 것이다.
신숭겸·김락(金樂) 등 여덟 명의 장수가 모두 전사하여 팔공산(八公山)이라 하였다 전하나, 공산전투에서 왕건 대신에 전사한 장수는 신숭겸과 김락 두 명이다.
대구시는 7월 28일부터 9월 30일까지 대구시청 인터넷 홈페이지 설문조사를 통해 팔공산 동봉의 본래의 명칭인 ‘미타봉’으로 변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팔공산 동봉의 높이는 1천167m, 서봉의 높이는 1천150m, 비로봉은 1천192m가 정확한 높이다.
산 아래에서 보면 볏짚이나 곡식을 수북이 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노적가리봉이라 부르던 노적봉을 오르려면 계단을 내려서서 능선 왼쪽으로 돌아난 길을 따르면 된다.
2.18 대구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팔공산 부인사는 7세기 중반 신라 27대 선덕여왕이 창건한 사찰로
팔공산에 숨은 사찰, 원효 대사가 도를 이루었다는 오도암
김유신의 단검이라고 한다. 오래전 장군은 팔공산 불굴산 원효굴에서 삼국통일을 위한 불도수행을 했다.
달구벌은 먼저 지리적 측면에서 천도 후보지로서 적합하였다. 첫째, 달구벌은 경주보다 광활한 지역으로서 그 주변에 분포한 팔공산 등 큰 산들이 분포해 있어 방어에 유리한
동화사와 파계사가 모두 견훤 세력과 깊이 밀착되어 있는 진표율종(眞表律宗) 즉 백제계 법상종에 속한 사찰로 신라 영토내의 견훤 세력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간에 벌어진 팔공산의 공산전투에서 왕건이 크게 패하여 도주할 때, 왕건의 여덟 장수가 팔공산에서 순절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는 설이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 이끄는 군대가 위세 당당하게 행군하는 모습에서 군위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졌다. 사실과 다르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이미 군위로 불렸다. 그보다는 김유신 장군이 백제를 치기 위해 군위 효령 장군동에 군대를 주둔시킨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한층 유력하다고 본다.
'무태'라는 마을 이름은 왕건이 병사들에게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고 태만함이 없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또 '연경'은 이곳을 지날 때 마을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히 들려와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살내=대구 북구 동서변동 금호강과 동화천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근처. 이곳에는 ‘화살이 내(川)를 이뤘다’는 뜻의 ‘살내’가 있다. 왕건과 견훤이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활을 쏴 하천이 온통 화살로 뒤덮였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묘동=지묘(智妙)는 ‘지혜로운 묘책’이라는 뜻이다. 신숭겸이 왕건의 갑옷으로 갈아입은 채
대구 불로동(不老洞)은 의미가 조금 다르다. 팔공산에서 금호강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곳은 왕건이 지나던 길에 ‘노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언급한 마을이다. ‘전쟁에 동원된 탓에 장정은 보이지 않고 여자와 아이들만 있다’고 해석된다.
적의 추격을 뿌리치고 한숨 돌린 곳이라는 뜻이다. 긴장했던 얼굴이 펴지고, 처량하게 길을 비추던 반달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안심 인근은 해안과 반야월이다.
적의 추격을 뿌리치고 한숨 돌린 곳이라는 뜻이다. 긴장했던 얼굴이 펴지고, 처량하게 길을 비추던 반달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안심 인근은 해안과 반야월이다.
적의 추격을 뿌리치고 한숨 돌린 곳이라는 뜻이다. 긴장했던 얼굴이 펴지고, 처량하게 길을 비추던 반달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안심 인근은 해안과 반야월이다.
◆은적사=대구 남구 앞산공원 인근에 있는 사찰이다. 은적(隱跡)은 숨는다는 뜻으로 왕건이 숨었던 절이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은적사 대웅전 옆에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조그만 굴이 있는데 왕건이 이 굴에서 사흘간 머물렀다고 한다. ◆안일사=왕건은 사흘간 머물렀던 은적사보다 더 안전한 은신처를 원했다. 안일사(安逸寺)는 은적사보다 깊은 골짜기에 있어 왕건이 ‘편안하게 머물렀다’고 해서 안일사가 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안일사에서 500m 거리에 위치한 왕굴은 왕건이 안일사까지 추격해 온 견훤을 피해 숨어들었던 풍화동굴이다.
불교 신자인 문정왕후가 집권하게 된 조선 명종 원년(1546년)에 국가의 보조금을 받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새로 짓게 되었다.
성종. 숙종. 덕종 등 왕가의 위패를 모신 기영각은 조선왕조의 비호를 받고 있는 파계사의 위용을 더욱 확고하게 했고 지방 유생과 양반의 방해 없이 파계사 수행자들은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대소인개하마비를 보게 되는데 하마비는 왕권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상징물입니다.
조선시대 예조에서는 왕릉인 수릉을 유지하고자 팔공산의 일부를 봉하고 일반 백성의 출입을 금하는 조치를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