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티아낙 술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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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sultanan Pontianak | ||||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일부 (1779년부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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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폰티아낙 | |||
정치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
술탄 1771년-1808년(초대) 1945년-1950년(마지막) | 샤리프 압두르라흐만 알카드리에 샤리프 하미드 2세 | |||
인문 | ||||
공용어 | 말레이어 | |||
종교 | ||||
종교 | 수니파 이슬람교 | |||
기타 | ||||
현재 국가 |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의 역사 Sejarah Indones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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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티아낙 술탄국(말레이어: Kesultanan Pontianak)은 18세기 후반부터 1950년까지 보르네오섬 서부 해안에 있었던 말레이 이슬람교 국가였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서칼리만탄주의 카푸아스강 어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술탄의 궁전이 있던 곳은 오늘날 인도네시아 도시 폰티아낙으로 성장하였다.
폰티아낙 술탄국은 1771년 하드라마우트 출신 샤리프 압두르라흐만 알카르디에(아랍어: عبد الرحمن القدري)가 이끄는 탐험가들이 설립하였다. 이후 그는 정략결혼을 두번 하였는데, 첫번째로는 파넴바한 멤파와흐(인도네시아어: Panembahan Mempawah)의 딸이었고, 두번째로는 반자르 술탄의 딸이었다.
탐험가들은 폰티아낙에 도착한 후 카다리아흐(Kadariah) 궁전을 세웠고, 177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부터 폰티아낙 술탄으로 승인받았다.[1]
폰티아낙 술탄국은 란방공화국과 우호적인 관계였다.
1943년-1944년경 일어난 폰티아낙 사건에서 술탄 샤리프 무함마드 알카드리에(인도네시아어: Syarif Muhammad Alkadrie)와 다른 모든 칼리만탄의 말레이 술탄들은 일본군에게 참수당했다. 그의 두 아들도 일본군에게 참수당했다.
마지막 술탄은 샤리프 하미드 2세(인도네시아어: Syarif Hamid II Alkadrie)였다. 폰티아낙 사건 당시에는 일본군에게 억류되어 있었고, 1950년 인도네시아에 의해 퇴임당했다.
순서 | 술탄 | 재위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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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샤리프 압두르라흐만 알카드리에
(Syarif Abdurrahman Alkadrie) |
1771-1808 |
2 | 샤리프 카심 알카드리에
(Syarif Kasim Alkadrie) |
1808-1819 |
3 | 샤리프 오스만 알카드리에
(Syarif Osman Alkadrie) |
1819-1855 |
4 | 샤리프 하미드 알카드리에
(Syarif Hamid Alkadrie) |
1855-1872 |
5 | 샤리프 유수프 알카드리에
(Syarif Yusuf Alkadrie) |
1872-1895 |
6 | 샤리프 무함마드 알카드리에
(Syarif Muhammad Alkadrie) |
1895-1944 |
7 | 샤리프 하미드 2세 알카드리에
(Syarif Hamid II Alkadrie) |
1945-19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