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덕천1동 豊德川1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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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Pungdeokcheon 1(il)-dong |
행정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
행정 구역 | 31통, 324반 |
법정동 | 풍덕천동 |
관청 소재지 | 경기 용인시 수지구 수지로 342번길 3 |
지리 | |
면적 | 3.4 km2 |
인문 | |
인구 | 36,179명(2022년 2월) |
세대 | 15,506세대 |
인구 밀도 | 11,000명/km2 |
지역 부호 | |
웹사이트 | 풍덕천1동 행정복지센터 |
풍덕천2동 豊德川2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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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Pungdeokcheon 2(i)-dong |
행정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
행정 구역 | 37통, 364반 |
법정동 | 풍덕천동 |
관청 소재지 | 경기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로 51 |
지리 | |
면적 | 3.4 km2 |
인문 | |
인구 | 41,001명(2022년 2월) |
세대 | 14,904세대 |
인구 밀도 | 12,000명/km2 |
지역 부호 | |
웹사이트 | 풍덕천2동 행정복지센터 |
풍덕천동(豊德川洞)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동이다. 수지구청이 소재하는 수지구의 중심지로, 좁은 의미로 관습적 명칭 '수지'는 풍덕천동 일원을 가리킨다. 수지(水枝)는 예로부터 풍덕천리, 죽전리와 성복리의 성복천 물줄기가 합쳐진 풍덕천동과 죽전동, 성복동 수계(水系)들이 합수되어 한강(漢江)으로 흐르는 탄천을 이룬다. 풍덕천동은 과거 삼남대로에 속했으며 옛 용인군 수진면(수지면)의 중심지였다. 토월초등학교에는 토월정자(吐月亭子)가 있어 옛 지명의 일단을 유추해 볼 수 있으며, 토월공원에는 노거수(老巨樹) 수령 10~100년 된 느티나무 군이 있다. 풍덕천동은 1987년 수지 전원도시 개발을 시작으로 많은 인구가 유입되어 현재는 아파트단지로 변모되었다. 풍덕천 2동은 2003년 11월 20일 주민자치위원회를 결성하였고, 2005년 1월 12일 주민자치센터가 정식으로 출범했다.[1]
풍덕천동은 고려시대 용구현(龍駒縣) 수진면(水眞面), 조선시대 태종 13년 용인현(龍仁縣) 수진면(水眞面)이었고 수진면에 속한 행정구역은 성복동(星福洞), 죽전동(竹田洞), 서봉동(瑞峯洞), 신리(新里), 정평리(停坪里), 동막리(東幕里), 손기리(孫基里), 고분현(古分峴)이었다. 『1872년 지방지도(1872年 地方地圖)』 용인현(龍仁縣)에는 풍덕천장기(豊德川場基)라 하여 수진면(水眞面) 명칭으로 토월리, 죽전동, 성복동이 확인되며 탄천 유역을 형성하고 있다. 1895년 용인군(龍仁郡) 수진면(水眞面)의 감바위(玄岩), 대지(枝), 신리(新里), 점촌, 정평리(亭坪里), 내대지(안대지말), 풍덕내(豊德來), 토월리(吐月里) 일대가 풍덕천(豊德川)으로, 1914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령 제 111호 부군면 통폐합(府郡面 統廢合)에 따라 수진면(水眞面)의 풍덕천(豊德川)에서 감바위(玄岩), 점촌, 대지(枝), 내대지(안대지말), 풍덕내(豐德來)를 수지면 죽전리라 하였고, 토월리(吐月里), 신리(新里), 정평리(亭坪里) 일부를 풍덕천리로 통합하여 수지면의 소재지로 삼았다. 본래 수지면 죽전리(죽전동)는 풍덕천(豊德川) 지역으로 포은 정몽주의 면례(緬禮) 행렬이 이어진 풍덕천(풍덕천동) 지역이 음운변화를 일으켜 죽절(竹節)에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풍덕천의 천(川)자가 원래는 하천의 '내 천(川)'자를 한자화한 것이 아닌 '올래(來)'자였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풍덕래(豊德來)'가 되는데, 그 의미도 '풍덕에서 온다' 또는 '덕이 크신 분이 (풍덕에서) 온다'가 된다. 이러한 지명 해석은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유택 안치와 풍덕천(豊德川)이라는 지명과 관련있다는 것인데, 본래 개성의 풍덕(豊德)에 있던 포은 정몽주의 묘소를 면례하면서 용인현의 풍덕천(豊德川)을 거쳐 현재 43번 국도를 따라 모현면 능원리의 문수산 아래 묘소를 자리 잡게 되는 과정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포은 정몽주는 선죽교(善竹橋) 피살 후 개경 풍덕군에 일시 평장 되었다가 후에 그의 고향인 경북 영천(永川)으로 천묘(遷墓) 도중 용인(龍仁)에 안치되었다. 그 면례 행렬이 용인현 풍덕천(수지구 풍덕천동)에 이르자 면례 행렬 앞에 세웠던 명정(銘旌)이 바람에 날려 용인현 풍덕천(수지구 죽전동) 대지고개 넘어로 날아가 용인현의 묘소자리에 떨어졌는데 남쪽으로 길을 떠나고자 하면,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행여가 움직이질 않아서 할 수 없이 명정이 떨어진 곳으로 가자는 뜻이라 하여 그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행여가 움직였고 그래서 용인에 포은 정몽주의 유택(幽宅)이 마련되었다. 당시 포은 정몽주의 행여길은 포은대로로 재현되었다. 하지만『1872년지방지도』에 이미 풍덕천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풍덕래(豊德來)'는 속설로 전해진다. 오히려 '풍덕'이라는 명칭이 이러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해 마을 하천이나 마을명으로 자리 잡았다. 『호구총수』에 보면 수진면(水眞面)에는 수상동(水上洞)과 수하동(水下洞), 즉 하천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등장하는데, 이때의 하천이 풍덕천으로 짐작되고 다른 일설에는 풍덕천의 깊이가 명주 한 필이 들어갈 정도로 깊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그 깊은 물에 많이 빠져죽어 '풍덩내'라고 하던 것이 풍덕천이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2]
단지명 | 건설사 | 시행사 | 주소 | 입주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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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마을 2단지 현대프라임 | 현대산업개발 | 프라임산업㈜ ㈜신안주택 |
수지구 정평로 89 | 2000년 2월 | |
신정마을 3단지 극동임광 | 임광토건㈜ 극동건설 |
수지구 정평로 73 | 2000년 5월 | ||
신정마을 5단지 성지 | 성지건설㈜ | 수지구 정평로 61 | |||
신정마을 6단지 우성 | 우성건설㈜ | 한국토지신탁 | 수지구 정평로 41 | 2000년 5월 | |
신정마을 6단지 진흥 | 진흥기업 | 진흥기업㈜ | 수지구 풍덕천로 19 | 1999년 12월 | |
신정마을 6단지 상록 | 공무원연금공단 | 수지구 풍덕천로 33 | 2000년 1월 | ||
신정마을 7단지 상록 | 수지구 풍덕천로 75 | ||||
신정마을 1단지 주공 | ㈜한양 | 대한주택공사 | 수지구 풍덕천로 91 | 2000년 3월 | |
신정마을 9단지 주공 | 삼익건설㈜ | 수지구 풍덕천로 76 | 2000년 5월 | ||
신정마을 8단지 현대성우 | 고려산업개발㈜ | 수지구 풍덕천로 52 | 1999년 11월 | ||
진산마을 래미안 수지6차 | 삼성물산㈜ 건설부문 | 삼성물산㈜ 건설부문 | 2002년 2월 | ||
진산마을 래미안 수지7차 | 2002년 11월 | ||||
진산마을 래미안 수지5차 | 삼성전자 | 2003년 7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