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암시성(Suggestibility)은 타인의 암시(suggestion)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을 말한다. 어떤 시나리오나 순간을 회상할 때, 사람은 타인에게서 받은 잘못된 정보(false information)와 함께 하는 어떤 기억(memory)에 존재하는 갭을 매우려고 한다. 피암시성은 회상(recall 혹은 recollection)을 단서로 사용한다. 어떤 과거 사건에 대하여 계속해서 듣게 된다면, 사건에 대한 기억은 반복되는 메시지를 따르게 된다.[1]
강렬한 감정(emotion)을 경험한 사람은 그 아이디어에 대해 보다 수용하게 되고 따라서 보다 피암시성이 강해진다. 일반적으로 피암시성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줄어든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자존감(self-esteem)과 자기확신(assertiveness)의 수준은 타인에 비해 보다 피암시성이 강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러한 발견이 피암시성의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을 만들게 하였다.[2]
피암시성의 전반적 특성(global trait)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이는 아래에 나오는 피람시성의 여러 유형들 간의 측정 가능한 차이를 구분하는 검사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3]
와그스태프(Wagstaff)의 관점에서는, (최면성) 암시에 대한 진정한 반응어느 단계에서든 자유의지에 따라 보이는 반응이 아니라[a] 진정한 비자발적 반응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유의지에도 불구하고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에,[3] 첫번째 범주는 실제로 최면성 피암시성(hypnotic suggestibility) 영역에 놓이게 된다.
피암시성의 자기보고 측정은 2004년에 가능해졌으며 이러한 측정 방식은 전반적 윽성을 분리시키고 연구할 수 있게 하였다.[5]
피암시성은 일상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피암시성은 극단적 상황에서도 보이며, 이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최면성 피암시성(hypnotic suggestibility)은 특성 유사성의(trait-like), 개인차 변수(individual difference variable)로 최면과 최면성 암시(hypnotic suggestion)에 반응하는 일반적 경향을 반영한다. 최면성 피암시성의 표준 측정에 관한 연구는 이 변수에 관하여 상당한 개인차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6]
한 피실홈자가 피암시성이 있는지 유뮤의 정도는 최면(hypnosis)의 과학적 연구와 관련 현상에 대한 유의미한 효과를 갖는다. 대부분의 최면치료사들과 연구자들은 최면 민감성(hypnotic susceptibility) 혹은 최면 암시성(hypnotic suggestibility)은 유용한 최면 상태 유도 요소라는 전제를 사용한다. 즉 이는 한 개인이 주어진 상황에서 특정 최면치료사와 특정 신념, 기대, 지시사항 하에 달성할 수 있는 최면의 깊이라는 것이다.
존 카파스 박사(Dr. John Kappas, 1925–2002)는 최면 유도를 높이는 피암시성 유형 세 가지를 밝혔다.
감정적 피암시성(Emotional suggestibility) : 감정에 영향을 주고 신체 반응을 제안하는 암시에 대한 높은 반응성(responsiveness)을 특성으로 하는 피암시성 행동(suggestible behavior)이다. 가벼운 최면상태(hypnoidal) 깊이와 관련되어 있다. 감정적 피암시성 소유자들은 직접적이거나 문자적인 암시보다는 추론(inference)을 통해 더 많이 배운다.
신체적 피암시성(Physical suggestibility) : 신체에 영향을 주는 문자적 암시(literal suggestion)나 감정적 반응의 제한에 대한 높은 반응성을 특성으로 하는 피암시성 행동을 말한다. 강직증 단계와 관련 있다.
지능적 피암시성(Intellectual suggestibility) : 피최면자가 최면시행자(operator)에게 제어당할 것을 두려워하거나 조작자가 말하는 모든 것을 분석, 거절, 합리화하는 최면성 피암시성 유형이다. 이러한 피최면자에게 시행자는 모든 암시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제공해야 하고 자신이 자기를 최면하고 있다고 피최면자가 느끼게 해야 한다.
그러나 피암시성(즉 최면에 대한 요소)이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한 명백한 동의안은 없다. 명백한 변수이자 동시에 측정이나 통제가 가장 어려운 요소이다.
동의되지 않은 부분은 피암시성이 다음과 같은 것 중 하나라는 것이다.
개념상 피최면성(hypnotizability)은 최면이 도출하는 피암시성의 증가로 정의되어 왔다. 실제로 피최면성은 최면 유도(hypnotic induction) 이후에 피암시성으로 측정된다. 데이터는 이러한 것들이 각각의 다른 구성요소라고 가리킨다. 최면 유도가 상당 정도로 피암시성을 늘리기는 하나, 최면 피암시성과 비최면 피암시성 간의 연관성은 피최면성 척도의 신뢰성 계수(reliability coefficient)에 가깝다. 이는 최면 민감성 척도(hypnotic susceptibility scale)가 피최면성인 것보다는 각성 피암시성(waking suggestibility)의 측정에 있어 더 좋다는 것을 시사한다.[7]
최면 현상의 기존 연구는 확장적이며, 무작위 통제 실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은 최면치료(hypnotherapy)의 효용과 합법성을 증명하지만, 연구된 실체나 단계의 개념이 완벽히 정의돤 것 없이, 한 개인이 객관적으로 피암시성을 지시하는 수준은 실험적으로 측정될 수 없다.정확한 치료적 결과를 예측 불가하게 만든다.
또한 개인에게 맞춰지지 않은 최면치료 프로토콜의 개발을 논리적으로 방해한다. 후자 관점에서, 설득 방식은 보다 보편적으로 효과가 있으나, 가장 신뢰성 높게 효과적인 방식은 접근 방힉을 개인화하는 것으로, 이는 동기, 학습, 행동, 감정 등의 유형을 우선 검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일부 최면치료사들은 내담자로부터 이력이나 이야기를 얻지 않는다.
개인의 피암시성 차이의 내막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서도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무관심한 접근법을 가졌다.
"가장 지적인 마음은 필연적으로 믿지 않아도 그에 대한 생각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이다.(The most intelligent minds are those that can entertain an idea without necessarily believing it.)"
— Aristotle
이는 아마도 최면치료사와 최면가를 훈련시키는 경험에 대한 보다 정확한 감응일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토로하는 것이 다른 이에게 영감을 줄 때, 듣는 이는 자신의 경험과 동기에 관계된 논리나 미적 관점, 관련성으로 인해 주관적 주의(subjective attention)를 기울이게 되면서 그 말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자연적 트랜스(trance) 상태에서, 최면치료사의 의도대로 통제된 사람들처럼, 비판적 기능(critical faculty)은 자연적으로 비판적인 면이 덜할 때에 자연적으로 덜 활발해진다.
'반드시 믿는다는 것(necessarily believing it)'이 문제가 될 것이다. 반드시 믿는다는 피암시성 개념은 신념이 유도된 사고 및 사고가 유도된 방식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의 자주성(autonomy)의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9]
새로운 암시에 반응하는 정도에 있어서, 대중 매체나 비전문가 글들에서 '피암시적(suggestible)'이라는 말은 '최면에 민감한(susceptible)'이라는 말과 혼용된다.두 단어는 동의어가 아니다. 그러나 '최면에 민감'하다는 말은 피암시성으로 설명하는 심리학상의 중립적 요소가 결여된 부정적인 편견을 내포한다.
최면 및 최면 치료 관련 과학 연구와 학술 문헌에서, 피암시성은 중립적이고 심리학적이며 생리학적일 수도 있는 상태나 현상을 말한다. 이는 문화적 편견이 보함된 일반적인 의미의 '영향 받기 쉬운(suggestible)'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둘 다 단어 뜻 자체에는 원래 없는 부정적인 사회적 함의와 연괸되기도 한다.
영향받기 쉽다는 것은 잘 속는다(gullible)는 말이 아니다. 잘 속는다는 것은 어떤 관찰자에게 있어서도 정확하거나 부정확하게 비춰질 수 있는 경험에 입각한 객관적인 사실이다. 반면, 영향받기 쉽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 암시에 열려 있다는 것은 들어오는 암시의 정확성과는 무관하며, 객관적인 정확성 역시 가능하다는 것도 아니다. 이는 형이상학적 신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치료사들은 치료를 가하기 전에 피암시성에 대한 걱정이나 반대가 있는지 검사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설득당해서는 안된다는 강한 인지적 명분이 있을 때, 설득력 있는 새로운 생각일 지라도, 설득당해선 안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한다는 합리적이고 학습된 강력한 의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매체 탄압이 있었던 대량 최면(mass hypnosis)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개인에게는, 최면치료사와 심리치료사가 과도하게 비대해진 신념체계(belief system)에 기반하여 검증되지 않은 행동들에 대해 설명하기도 한다.
'민감한(susceptible)'이라는 말은 피해를 당하거나 방어해야 할 약함(weakness)이나 위험(danger)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감하다는 것은 기대에 대하여 부정적인 효과가 있고, 그 자체로는 암시는 알아차려서 방어해야 하는 최면 암시이기도 하다. 최면 암시란 용어, 구절, 개념을 의미하며,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주관적 감각(subjective sensation)을 이해하거나 적절한 반응에 대한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다. 즉 단 한 단어로 말하면, 테러리즘(terrorism)으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하여 테러(terror)의 개념을 이해해야 하고 바로 '그' 주어진 물체를 의미하게끔 의도되었다는 문장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 구절에 대한 인지(cognition)는 다음에 어떻게 행동할 지 결정하기 전에 발생한다. 개념(decision)은 마음(mind)보다 앞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음 자체로부터 암시당할 수 있다. 혹은 세계, 시나리오, 타인의 암시 등, 외부로부터 온 개념들의 유도된 암시에 반응할 수도 있다.
암시는 사고(thought)를 감독하여, 새로운 개념을 인식하거나, 현실 세계의 특정 영역에 주목하거나, 행동-선택에 영향을 줄 새로운 관점을 내놓거나, 자동화 행동(automatic behavior)을 일으킬 촉발제(trigger)를 제시하거나, 특정 행동 유형을 지목할 수 있다. 최면치료에서 내담자에게 요구한 성과에 대하여 내담자가 실제 현실에서 경험한 것들을 묘사한 것을 살펴보면, 이러한 경험은 아부(flattery)나 위기(urgency) 상황에 의해 암시된다. 또한 내담자 본인의 동기, 추동력, 기호 등 개인적인 것들에 의해서도 암시를 당한다.
암시는 반드시 말로 이뤄지거나 입으로 말하거나 눈으로 읽히는 것은 아니다. 미소, 눈초리, 윙크, 정장(three-piece suit), 과학자의 흰 가운 등 모든 것이 목전의 행동보다도 더 많은 함의를 담고 있는 암시적 장치이다. 최면가는 기법을 이용하여 이러한 본능적인 '틈을 메우는 것들(fillings-in of gaps)'을 이용하여 우리가 어떤 시나리오나 순간에 반응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치료 상황에서, 최면가나 최면치료사들은 이러한 자동 인지 비약(automatic cognitive leap), 도그마(dogma), 자기제한신념(self-limiting belief) 혹은 자기태업신념(self-sabotaging belief)과 같은 것들을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암시의 영향 하에 있다는 사실은 자기만의 수용과정(private acceptance)이나 자기 신념(private belief)이 없이 타인에 대한 행동순응(behavioral compliance)을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즉 자기만의 자유의지(volition)나 신념과는 거리가 먼 행동, 혹은 자연스럽고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 행동-동기(action-motivation) 등이 있다. 이는 한 개인의 자주성(autonomy), 표현력(expression), 자기결정권(self-determination)을 저해할 수 있다. 또한 마찬가지로 감정(emotion)을 이성적으로 선택한 공을 들인 장기적인 결과물들로 대체할 수도 있다.
최면은 매우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으며. 암시에 대한 반응을 조사하는 것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뉠 수 있다.
최면 반응(hypnotic response)에 대한 이론적 설명에 의하면, 니콜라스 스파노스(Nicholas Spanos)의 역할 이론(role-playing theory)의 경우, 최면대상자는 심리학적 혹은 생리학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압박(social pressure)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들은 거역(disobey)보단 순응(comply)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피최면자가 실제로 암시 효과를 경험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론은 최면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은 일부 사회적으로 구축된 것이며, 따라서 '변성의식상태(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 수면, 약물복용, 임사, 명상, 최면 상태 등 비일상적인 의식 상태)'를 통하여 최면 상태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4]
아동은 자기 주변의 자원으로부터 새로운 정보들로 계속 채워지는 방식으로 마음을 발달시킨다. 이는 아동의 높은 피암시성의 원인이 되며, 그렇기에 아동은 피암시성 조사에 있어 중요한 영역을 차지한다. 연구자들은 아동의 치암시성에 있어 강력한 지표인 내적 여소와 외적 요소를 발견하였다.[10]
성적 학대, 극도의 불안, 학대(mistreatment) 등 극단적인 사건들 속에서, 아동은 피암시성을 크게 보일 수 있다. 아동은 실제 발생한 적 없는 일을 떠올릴 수도 있고[14] 혹은 그들은 너무 트라우마를 크게 받아서 실제 발생한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기도 한다.
허위 후사건 정보(misleading post‐event information)의 부호화(encoding)가 이뤄지거나 복구(retrieval) 가능 시간에 발생하는 불안 기분이 이후의 피암시성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비피암시성 항목에 대한 기억의 정확성은 불안 기분 유발(anxious mood induction)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피암시성에 있어 허위정보(misleading information)의 강력한 효과가 있었다.[15] 이는 불안발작(anxiety attack)과 같은 높은 감정적 상황이 피암시성으로 오해할 수 있는 생각을 자아내는 방식 중 한 사례에 불과하다.
연구의 다른 예로는 기억, 피암시성, 스트레스 각성, 트라우마 관련 정신병이 학대 및 방임(neglect) 사건 조사에 간여한 328명의 3~16세 아동들로부터 검사되었다. 아동들의 기억력과 피암시성은 의학 시험과 정맥천자(venipuncture)를 위해여 측정되었다. 나이가 많을 수록 인지기능이 높을 수록 부정확성이 떨어졌다. 또한 해리성 성향이 높은 아동들의 코르티솔(cortisol) 농도와 트라우마 증상은 기억 오류가 상대적으로 증가한다는 것과 연관된다.[16] 어린 아동의 피암시성이 스트레스성 혹은 트라우마성 경험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또다시 입증하는 것이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와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 환자는 특히 피암시성이 강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17] 해리성 정체성 장애 환자는 피최면성 척도에서 높은 점수를 보이지만,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18]
군중 역학(crowd dynamics)과 몹 행동(mob behavior) 단계, 집단사고(groupthink) 현상은 피암시성 사례이다.
일상 속 피암시성 행동의 사례로는 한 사람의 하품을 본 후에 여러 사람들이 똑같이 하품을 하는 '하품 전염(contagious yawning)', 의대생(medical student) 한 명이 어떤 질병의 증상에 대해 읽거나 들은 후에 실제로 그 증상을 겪는 의대생 증후군(medical student syndrome)이 있다. 위약 반응(placebo response) 역시 일부는 피암시성의 개인차에 기반한 것으로 본다. 피암시성이 높은 사람은 치료 기전이 아닌 치료에 대한 환자의 믿음에 더 의존하는 대체 치료(alternative health practice)에 더 반응할 수 있다. 보건 치료의 효과에 관한 연구는 피암시성의 개인차를 통제함으로써 한층 고양될 수 있다. 정신 측정 연감(Mental Measurements Yearbook)을 검색하여도[19] 이러한 성격 특성(personality characteristic)의 심리적 검사가 현재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구드욘손 피암시성 척도(Gudjonsson suggestibility scale)는 주시의 폭이 좁기 때문에 심리 검사 목적에 있어 의문점이 제기된다. 또한, 높은 피암시성의 사람들은 암시를 비판적으로 처리하지 못하여 감정을 이용한 광고(emotion-based advertising)에 쉽게 낚이기 때문에, 그르친 판단을 내리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