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비라모치(일본어: 花びら餅, 葩餅)는 우엉, 콩소와 함께 마름모꼴의 홍색 모치를 원형의 흰 모치 또는 규히(求肥)를 반으로 접어 감싼 화과자이다.[1][2]
헤이안 시대 궁중의 신년 행사인 하가타메(일본어: 歯固め)를 시행할 때에 먹은 음식에서 유래하며, 에도 시대에는 오늘날의 형태로 정착했다.
하가타메(일본어: 歯固め)에서는 정월 초하룻날부터 초사흗날에 걸쳐 장수를 기원하여 딱딱한 음식을 먹었다. 헤이안 시대의 《강가차제》(江家次第)에서는 무, 외, 멧돼지 고기와 은어 젓갈 등이 제시된다.[3]
에도 시대에 궁중에 과자(菓子)를 납품했던 가와바타 도키(川端道喜)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얇게 편 흰 모치(하나비라모치, 일본어: 葩餅) 위에 붉은 히시모치(일본어: 菱餅)를 깔고, 그 위에 오시아유(일본어: 押鮎)를 올린다.[4] 이후 점차 간략화되어, 하나비라모치는 히시모치와 오시아유를 본뜬 우엉, 미소를 넣은 형태로 변화했다.[1] 모치와 미소의 조합이 조니와 유사했기 때문에[1] 궁중조니(일본어: 宮中雑煮) 혹은 쓰쓰미조니(일본어: 包み雑煮)라고 불리며, 꽃잎을 본딴 형태로부터 하나비라모치(花びら餅)라고도 불리며, 공가(公家)에 배급되었다.[4]
메이지 시대에 일본 다도의 주요 유파 중 하나인 우라센케(일본어: 裏千家) 가원(家元) 11세 겐겐사이(일본어: 玄々斎)가 새해에 처음으로 시행하는 다회인 하쓰가마(일본어: 初釜) 때 이 과자를 사용할 것을 궁중으로부터 허가받았다. 이렇게 신년을 상징하는 화과자가 된 것을 계기로, 일본 각지의 화과자 장인들로부터 제조되게 되었다.[1][4]
당초에는 우엉이 두 송이였으나, 현재는 한 송이만 사용하는 것이 주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