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 나인(Alice Nine / A9)는 일본의 비주얼계[2]밴드이다. 활동 초기 밴드의 컨셉은 일본식(和)과 서양식(洋)의 조화였기 때문에 패션이나 음악에도 "和"를 도입했지만[6], DVD 싱글〈NUMBER SIX.〉즈음에서 거의 전면적으로 "洋"을 의식한 스타일이 되어 적지 않은 변화가 이뤄졌다. 틀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7][6][8]과, 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최대한으로 고려한 라이브를 들려주고 있다[9]. 멤버 전원이 10대 초반인 시절에 X JAPAN[10]이나 LUNA SEA[11]에 충격적인 영향을 받아 비쥬얼계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2004년5월에 "アリス九號"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 당시에는 정식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일시적인 형태로 활동했지만, 그런데도 같은 해 7월에 발매된 싱글〈「名前は、未だ無ひ。」〉은 한정판 1000장이 빠르게 매진되었다. 그 직후 Ayabie와 커플링 라이브 투어를 하여 더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8월 24일부터 정식으로 "アリス九號."로 활동을 시작. 9월부터 PS COMPANY에 소속됐다.
밴드명의 유래는 "アリス"라는 단어가 갖는 팝하고 시니컬한 이미지, 음양도에서 최대 및 최강을 나타내는 "九"라는 숫자, 그리고 "號"라는 한자의 강한 이미지로부터 팝한 느낌과 하드한 느낌을 모두 갖추고 유연성을 가진, 그리고 접근할 수 있는 이름을 지었다.[12] 이 이름을 지어준 것은 Shou로, 일본의 밴드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한자를 사용하고 싶었다고 와 그는 말했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부터 취한 것이 아니라, 나가노 마유미의 서적인 「소년 앨리스」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13][12]
2005년2월부터 3달 연속으로〈銀の月 黒い星〉〈闇ニ散ル桜〉〈百合は蒼く咲いて〉 싱글을 발매.[14] 이 싱글들은 최종적으로 PS COMPANY와 King Records의 공동 계약을 통해 미니 앨범《華想夢想紙》으로 컴파일되었다. 또한, Kra와 Kagrra 등 몇몇 밴드와 라이브 투어를 감행하였다. 이 이벤트들 이후, 8월에 밴드 단독으로는 첫 번째 라이브 투어를 했다.
그들은 2006년4월에 첫 번째 장편 앨범《絶景色》를 발매했다. 10월에 발매된 DVD 싱글, 〈NUMBER SIX.〉초회한정판에는 "완전판"으로 Tora가 각본을 쓴 1시간 미만의 짧은 동영상 뒤에 악곡이 시작된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짧은 동영상에서는 밴드 멤버가 진지하고 뜨겁게, 청춘드라마를 연기하고 있다.[9]
2007년5월에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주에서 개최된 "JRock Revolution festival"에 많은 비주얼계 밴드와 함께 참가했는데 이때가 일본 이외의 곳에서 한 첫 번째 라이브 퍼포먼스였다.[10]
6월에 발매된 싱글〈WHITE PRAYER〉에 대해 잡지SHOXX에서의 인터뷰에서 Shou는 설명했다: "이 곡은 우리가 목표로 한 음악성을 정의하고, 그것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곡이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졌지만, 이번 악곡 창조프로세스는 이전보다도 자연스러웠습니다."[15]
2008년 라이브 투어 "A to U"를 감행했을 때, Tora는 자신의 왼쪽 몸 전체에 마비 증상을 느끼고 기타를 연주 할 수 없게 되었다. 의사로부터 받은 진단결과는 시간이 지나며 악화된 추간판 탈출증로,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밴드가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Tora가 충분히 회복할 때까지 라이브 투어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3월에〈MIRROR BALL〉이라는 싱글을 발매했다. 이 곡은 만화《아쿠에이리언 에이지》의 실사영화판에 사용되고, 영화에도 "アリス九號." 역으로 출연했다.[18][19]
싱글〈MIRROR BALL〉은 앨범《Alpha》의 수록 후보였지만, 이 영화의 공개 시기에 맞추기 위해 앨범에 수록하지 못했다. Shou는 영화 스크립트를 읽은 뒤, 밴드는 곡의 테마를 "인간의 빛과 그림자"로 정했다. 그 테마는 곡의 가사와 타이틀에 반영되었는데, Shou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타이틀인 '미러볼'은 '인간의 빛과 그림자'라는 나의 표현의 하나입니다. 미러볼 자체로는 빛날 수 없고 빛나는 빛을 필요로 합니다. 나는 그것을 생활에 비교했습니다."
8월에 싱글〈RAINBOWS〉를 발매했다. 이 곡의 가사에 대해 Shou는 데모 테이프를 들은 뒤, 레이저 불빛으로 가득한 디스코에서 놀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리고 거기에서 '어둠 속에서 강하게 외치는 빛'이라는 테마에 맞추어 작성했다. 이후 라이브 투어 "Discotheque play like 'A' Rainbows"를 시작했다. 콘서트 영상은 DVD, 《Discotheque play like "A" Rainbows -enter&exit-》로 발매됐다.
2009년1월에 3번째 앨범《VANDALIZE》가 발매됐다.[21] 타이틀은 "구축을 위한 파괴"라는 의미로, Shou가 말하기를 "(2008년여름경 라이브 투어를 돌고 있었을 때에) 밴드 멤버가 자신들의 껍데기를 벗어던지려고 하는 것을 느끼고 구축을 위한 파괴를 느끼게 하는 앨범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여 타이틀을 'VANDALIZE'로 했다."라고 말했다.[22]
앨범 발매 후 몇 주 동안 "Untitled Vandal(ism)"라는 타이틀의 라이브 투어를 2월부터 8월까지 했다.[23]
라이브 투어 마지막은 도쿄 국제 포럼홀에서 8월 23일에 했고 콘서트영상은 DVD, 《Untitled Vandal(ism)#Finale [Graced The Beautiful Day]》로 발매되었다.
6월 이후, 미디어에 노출되는 표기를 "Alice Nine"으로 통일했다.[24][6] 이유는 "アリス九號."라는 표기는 디자인과 밴드 자신의 음악적인 접근이 한정되기 때문에 "미학을 표현한다"라고 하는 목적을 잃고 있기 때문인 것과 원래는 영어로 표기하려고 만든 밴드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8월에 싱글〈華【hæ・nǝ】〉를 발매했다. 이 곡을 Shou는 "달콤하고 오리엔탈의 느낌이 있는 댄스에 적합한 곡"이라고 설명했다.
9월에 니코니코 동화상 사이트상에 "니코니코 생방송"에서 공식 레귤러 방송 "Alice9ちゃんねる"이 스타트했다. 방송의 진행자는 Tora가 맡았다.[9] 방송 내용은 밴드의 선전을 겸하여 뮤직클립 등을 방송했는데 기본적으로는 TV예능 방송과 차이 없는 수준으로 전개되었고 밴드 멤버로 인한 콩트가 중심이어서 인기가 있었다. 머리 위에 대야가 떨어지고, 채소로 엉덩이를 맞고, 멤버의 집에 무단으로 돌격하는 등, 지나치게 가혹한 기획에 그들은 전력으로 임했다.
7월에 라이브 투어 "Flash Light from the past"를 시작했다. 라이브 투어의 마지막은 2011년1월 6일에 일본 무도관에서 실시했다.[26] Alice Nine 단독으로는 일본에서 최대 규모의 관객을 동원한 콘서트로, 약 8000명의 관객이 왔다.[27] 콘서트 영상은 WOWOW[27]에서 방송되고 이후 DVD, 《Tokyo Galaxy Alice Nine Live Tour 10 "Flash Light from the Past" Final at Nippon Budokan》로 발매됐다.[7]
4번째 풀 앨범인《GEMINI》는 2월에 발매됐다. 타이틀은 "쌍둥이자리"의 의미이지만, 이 앨범에서는 "생과 사"와 "빛과 그림자"와 같은 상반되는 요소를, 즉 양면성의 테마를 나타내고 있다.[28] 이 테마는 조곡 "GEMINI-0-eternal" "GEMINI-I-the void" "GEMINI-II-the luv"에 가장 많이 표현되어있다. 발매 시에 오리콘 위클리 차트에서 3위를 달성하여 그들의 앨범으로서는 사상 최고 랭크를 기록했다.[7] 이후 라이브 투어 "Spring Circuit -Prelude to 'Gemini'"를 4월부터 5월까지 진행했다.[7]
2013년 3월부터 3달 연속으로 3타이틀 싱글이 발매됐다.[34] 이 싱글들을 수록한 6번째 풀 앨범《Supernova》가 2014년3월 19일에 발매되어, 이 앨범은 iTunes에서 음원 공개도 했다.[35]5월부터 7월에 밴드로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아시아 투어 "Supernova Symphonia"를 실시했다,[36] 이 라이브 투어는 일본을 횡단한 후에 선전, 광저우, 우한, 베이징, 상하이, 충칭, 샤먼, 타이중, 타이베이,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 홍콩, 서울을 방문하는 가혹한 스케줄이었다.[37] 콘서트 영상은 DVD, 《Resolution -ALICE IN ASIA-》가 타워레코드(TOWER RECORDS) 한정으로 발매됐다. 8월 23일에 "10th Anniversary Live -NEVER ENDING UNIVERSE-"라는 타이틀의 콘서트를 후지큐 하이랜드에서 열었다.[38] 콘서트 이틀 뒤에 그들은 PS COMPANY와 전속 계약을 해제하여 독립했다. 다시금 자신들의 원점으로 되돌아 밴드로 한층 더 성장을 목표로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의 의견에서 결정되었습니다.[38]
2015년 이후, 밴드는 "A9"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39][40] 또한, 크라우드 펀딩프로그램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생각을 발표했다.[41]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은 음악을 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이 응원해주신 에너지를 보다 직접 돌려드리는 방법은 없는 걸까?'라며 모색하던 중 찾아낸 한 가지 답이 이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방법이었다. 아티스트와 작품을 응원해주시는 리스너라고 하는 관계를 재정의하고 새로운 도전으로 함께 제로부터 스타트를 밟아 나가고 싶다는 우리의 소원이 형태로 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10대일 때 LUNA SEA를 보고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할 때 솔로나 유닛이나 밴드와 같이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지만, 역시 밴드라고 했을 때 꿈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들어내는 음악 이상으로 다른 사람을 빛으로 안내하는 힘이나 설득력이 있다고 말이죠. 「멋진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어떻게 연출하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주얼계가 되었다고 할까요.
음악 장르는 아니지만, 그것에 영향을 받아서 밴드를 하고 있으니, 비주얼계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 지금 저희 세대에게는 전혀 위화감은 없어요.
지금, 세상은 여러 가지 표현이 점점 극단적으로 되고 있고, 굉장히 과장된 표현이거나 힘이 없으면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와중에 이 비주얼계라고 하는 것은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음악 장르는 아니라서, 오히려 음악은 무슨 장르이건 상관없다는 말이죠. 재즈, 펑크나 로커빌리라던가 익렉트로와 같은 요소가 들어 있더라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그 경계가 없어요. 무엇을 하더라도 상관없고, 게다가 굉장히 TOO MUCH한 무대와 같은 장식을 한다고 해도 괜찮아요. 언뜻 보기에 폐쇄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처럼 자유로운 세계입니다. 그러니 그 비주얼계의 좋은 점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비주얼계로서의 간판을 내걸고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할 수 있도록, 많은 선택 중에서 어떻게 표현해 나갈 것인가 생각합니다.
J-POP에는 다양한 밴드가 있습니다만, 평범한 보통 사람이 봤을 때 보컬 이외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밴드가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비주얼계 밴드를 봤을 때는 보컬 이외의 멤버도 캐릭터가 굉장히 눈에 띄게 서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보컬이 아니기도 하고 기타리스트로서의 "개성"을 목표로 하고 싶어서, 그 수단으로 메이크업이나 의상에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입니다.
비주얼계라는 표현은 굉장히 어려운 단어라고 생각해요. 제가 철이 들었을 때부터 이미 존재하던 단어라서 그 이미지는 옛날부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비주얼계라고 하는 단어 자체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사회 통념상으로는 일정 부분에서 진화가 정체된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저 자신은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아서, 공연 스테이지에 섰을 때의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 좋기도 하고 메이크업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 뿐, 그런 것들이 비주얼계라고 불린다면 그런대로 전혀 문제가 없기도 하고, 음악은 특별히 비주얼계를 의식해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반대로 비주얼계를 의식한다고 하는 그 "의식"이라는 것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지 모르기도 하고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일본의 뮤지션은 역시 해외 뮤지션을 항상 동경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들과 함께 스테이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다만, 일본인은 외국인과 비교하면 얼굴의 윤곽이나 특징이 뚜렷하지 않아서, 그만큼 스테이지에서 눈에 띄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며 메이크업을 하고, 화려한 의상을 선택해서 외국인에게 지지 않도록 특징을 표출했다.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마치 "일본의 문화"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저는 단순하게 "그런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그것을 해외에 있는 사람이 보고 마치 코스프레를 하는 것처럼 메이드 카페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물론 맞는 부분도 있지만 틀린 부분도 있어요. "계"를 뺀 "비주얼" 부분을 말하자면, 나 자신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을 확실하게 보여주자, 단순히 메이크업하는 것뿐만 아니라 개성을 내보일 수 있도록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사람의 가치관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르잖아요. 저는 학생 시절에 LUNA SEA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음악만 들어 온 것은 아니고, 음악으로서 흡수하는 소재는 여러 가지가 있고, 비주얼계는 맨 처음의 계기에 지나지 않아요. 어떤 장르이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함께 존재해요. 자유롭기도 하지만 폐쇄적이기도 하듯이요. 저는 저 자신의 가치관 중에서 비주얼계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비주얼계라고 하는 말은 지금까지 선배들에 의해 완성된 단어이지만, 비주얼계라고 하는 단어의 옛날과 지금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고, 지금은 이 단어 혼자 알아서 진화하고 있는 상황으로, 이 단어에 의지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단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 단어의 주변에는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원래는 기발한 겉모습에 음악이 견고하게 자리 잡은 형태가 좋은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표면적인 부분만 도드라져 보이고 본질은 소홀하게 되는 일도 일어나서, 그야말로 비주얼계의 계가 빠진 비주얼 밴드도 늘어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역시 음악과 외모를 모두 균형 있게 양립시키는 것이야말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밴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LUNA SEA와 Mr.Children인데요, LUNA SEA가 너무 좋아서 화려한 의상을 입는 비현실적인 것에 동경했었죠. 저는 그쪽이라면 익숙해질 것 같아서, 자신들이 잘 살릴 수 있는 상황을 메이크업이나 의상으로 완성해서 밴드를 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비주얼계를 의식해서 그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간을 들여서 메이크업도 했지만, 지금은 음악을 중심으로 하며 그 연출과 표현 방법의 하나로서 메이크업이나 의상이 있다고 하는 의식을 갖게 되어서, 비주얼계라고 하는 카테고리 안에 머물려고 하는 의식은, 솔직히 지금은 이미 없습니다.
저의 사춘기가 밴드는 곧 비주얼계를 의미하는 시기였고,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비주얼계 밴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가 살아 있어서 아주 재미있었어요. 저는 hide씨한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화려하고 오래 보더라도 싫증 나지 않고, 음악도 자극적이고 매력적이었어요.
저 자신도 「음악」을 가리키는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어렵고 한 단어로 정의해서 옭아매는 것은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저는 그런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원래부터 그렇게 불려 왔던 선배들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기에, 그것을 부정할 만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요.
한때의 이미지로 비주얼계 여장을 한 것을 보고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제대로 솔직하게 하다 보면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조금씩 그러한 이미지도 바뀔 거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좋은 울림으로 바꿔 나가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나가고 싶어요.
제가 비주얼계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관객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부분이 아주 많고, 연주도 멋있어서 최근의 휴대폰을 예로 들면 전부 다 들어 있는 듯한? (웃음) 혜택이 가득한 느낌. 좀 더 말하자면 즐거우면서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고, 게다가 자신이 직접 연주하면서도 황홀해져요! 그런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을 알아버려서, 평범한 모습으로 연주하는 것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단 말이죠. 그래서 그것을 보고 「좋다」고 생각하며 성장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직접 다음 세대에게 전수해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